여기, 그를 보라 한 프레임 안에 여러 얼굴이 어지럽게 중첩되어 있다. 다중노출과 장노출로 얼굴의 윤곽이 뒤섞이고, 이목구비가 허물어진 형상은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초상화를 닮았다. 그 그림을 볼 때마다 마음이 서늘해지는 건, 단순히 그로테스크한 형상 때문만은 아니다. 어쩌면 존재가 분열하거나 해체되는 고통의 순간이 가시화된다면, 바로 이러한 모습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선명한 얼굴이 담긴 초상 사진을 바라볼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이 연동된다. ‘그는 누구인가?’ 사진 속의 그가 어떤 존재인지 식별하려는 인식 능력이 발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뼈와 살이 마구 뒤엉켜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얼굴을 분별하기 어려운 권순관의 초상 사진은 우리의 인식 능력을 무력화시킨다. 이 사진을 바라볼수록 ‘그는 누구인가’라는 질.. 더보기 이전 1 ··· 331 332 333 334 335 336 337 ··· 104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