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 썸네일형 리스트형 유모와 사진가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비비안 마이어와 게리 위노그랜드의 전시가 화제다. 게리 위노그랜드는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의 사회상을 자신만의 기법으로 담아낸 전설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전문가라면 그의 이름을 모를 수가 없다. 반면에 뉴욕에서 태어난 비비안 마이어는 알 턱이 없었다. 2009년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무려 10만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지만, 평생을 유모나 가정부로 살았던 탓에 아무도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가족도 모아놓은 돈도 없이 말년을 보냈던 그의 사진은 2007년 밀린 창고비를 챙기려는 창고 주인에 의해 처음으로 동네 경매시장에 나왔다. 우연히 이 상자를 발견한 것은 자신이 사는 동네를 재조명해 부동산 값을 올리려 했던 젊은 부동산업자 존 말루프였다. 그는 단지 동네의 옛 모습을 보여주.. 더보기 어둠의 유머 의사가 편도선을 들여다보듯이 한 남자가 아이의 목구멍을 들여다보고 있다. 언뜻 그렇게 보이는 이 그림의 실상은 황당하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가 그린 이 그림의 제목은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생애(El Lazarillo de Tormes)’(1808~1812)다. 이 주제는 16세기에서 17세기 스페인에서 유행한 문학양식의 하나인 피카레스크 소설(picaresque novel)에서 유래했다. 이는 ‘피카로’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당대의 많은 무직자·불량배 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자전적 형식의 소설이다. 이집 저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자신은 물론 주인을 풍자 대상으로 삼는 이 소설은 악한 소설 혹은 건달 소설이라고도 불린다.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생애’ 속 화자 라사리요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기꾼의 하.. 더보기 안녕, 신흥동 지난달 군산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이렇게 작은 도시를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반갑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하나 반나절쯤 지내다 보니 따로따로 왔는데 단체 관광객이라도 되는 양 다들 같은 동선으로 움직인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치 파리에서 등산복을 입고 돌아다니면 한국 사람인 것처럼, 맛집이라 소문난 곳에 한 시간씩 줄을 서고, 지도에 박힌 답사 코스를 따라 걷고 있으면 분명 외지인이다. 그곳은 대개가 신흥동, 장미동 등 군산항 일대다. 일제강점기 미곡을 수출하면서 번성했던 군산의 씁쓸한 역사가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곳. 관광객 유치를 위해 군산시가 공들여 다듬어 놓은 박물관이나 적산 가옥이 아니라면 이곳 또한 평일에는 쓸쓸해 보일 게 분명했다. 채만식이 에서 그려낸 미곡수탈 시대의 천태만상.. 더보기 [기고]‘법보다 예술버스’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22조는 예술의 자유 및 예술가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예술의 특권적 지위를 위해서나 예술가가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다. 어느 시대든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가치가 지배권력으로부터 억압받지 않고 작동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예술가의 권리를 법률로써 보호해야 하는 것은 예술가들이 가난하고 힘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예술이 창조경제를 이끌고, 문화융성을 위해 애쓰기 때문은 더욱 아니다. 예술가들은 세상을 조금 더 감각적으로 마주하는 역할을 해왔으며, 타인의 고통과 사회적 모순에 좀 더 민감하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늘 국가권력의 폭력에 예민하며, 지배계.. 더보기 신과 맞짱 뜨다! 창세기 32장에는 천사가 야곱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엄마의 명에 따라 외숙부의 집에서 14년의 종살이를 마치고 돌아가던 중이었다. 앞으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빼앗긴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러 오고 있었고, 뒤로는 딸들을 빼앗긴 외숙부에게 쫓기는 진퇴양난의 기로에 처했을 때였다. 가족들을 먼저 고향으로 보내고 홀로 있던 야곱에게 누군가 다짜고짜 결투신청을 해왔다. 야곱은 자기에게 싸움을 건 자가 형과 숙부의 첩자가 아닌 하나님이 보낸 천사였음을 깨닫고 천사(곧 하나님)에게 매달린다. “나를 축복하여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갈 수 없나이다.” 위기에 처한 자신의 처지를 깊이 깨달은 야곱은 새벽이 지나도록 간청하고 또 애원했던 것. 이에 지칠 대로 지친 천사.. 더보기 매그넘 퍼스트 2006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의 프랑스 문화원 지하실에서 정체 모를 나무 상자 두 개가 발견되었다. 먼지를 뒤집어쓴 이 상자에서는 군데군데 곰팡이가 핀 86점의 프린트가 나왔다. 8명의 사진가가 각기 합판 한 장 위에 사진을 붙여 전시한 뒤, 보관을 위해 조잡하게 사진 크기에 맞춰 합판째 잘라낸 흔적이 역력했다. 당사자들조차도 까맣게 잊고 있던 매그넘의 첫 번째 사진전의 내막은 마치 사막에서 발견된 미라처럼 무려 50년의 시간을 지나 이런 식으로 출몰했다. 한미사진미술관의 ‘매그넘 퍼스트’는 이 원본을 복원해 고스란히 보여주는 전시다. 화려하고 세련된 최근 전시 경향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이 사진전은 조금 시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예산 기획에 가까운 이 전시가 요즘 사진전의 원조 격이라는 것을 감안하.. 더보기 이 시대 우리의 건축 그리고 그 문화풍경 지난주 10년 만에 헬싱키를 찾았다. 이 도시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도시디자인 전략을 알아보는 공식적인 일 외에, 나는 핀란디아 홀 바로 옆에 최근 새로 지은 ‘뮤직센터’라는 콘서트 홀을 보는 일에 관심이 있었다. 1971년에 개관한 핀란디아 홀은 작곡가 시벨리우스를 기념하여 이 나라가 자랑하는 건축가 알바 알토가 지은 걸작이다. 그런데 아무리 잘산다고 해도 인구 60만명에 불과한 도시에 또 새로운 음악당이라니…. 이 의문은 현지의 설명을 듣고 풀렸으나,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핀란디아 홀은 핀란드의 토속적 아름다움을 건축의 형태와 공간으로 치환하여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했다고 일컫는 현대건축의 보물이다. 근데 이 아름다운 건축이 음향에서 문제가 줄곧 제기되었다. 내부의 천장 형태가 건축가 고유의 디자인.. 더보기 [기고]KBS교향악단 사태와 예술적 신념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연주한다. 청중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도 없다.”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가 남긴 말입니다. 일견 오만하고도 독단적인 이 발언은 특정 경지에 이른 어느 음악가의 독특한 예술관과 확신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그는 현실과의 타협을 거부하며 음악의 이상적 완성만을 고집했고, 이것은 예술가의 정당한 소신으로써 인정받았습니다. 교향악단은 이에 필적할 정도로 확고한 성향과 신념들로 충만한 예술가들이 모인 집단지성체입니다. 1842년에 창단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1997년까지 여성 연주자의 채용을 거부했고, 원전악기의 사용을 고집하며, 상임지휘자 제도를 배제한 채 단원들이 직접 객원지휘자들을 임명하는 관행은, 그러한 행동양식에 담긴 당위성의 존부를 차치하더라도,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을.. 더보기 뭉크의 감정 서울 인사동에서 우연히 유명가수 C씨의 그림전시를 관람한 적이 있다. 평소 유명인의 전시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탓에 그저 그런 아마추어의 전시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이 가수의 작품은 그냥 스쳐 지나가기에는 분명한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바로 ‘감정’이었다. 좀 진부한 방식이긴 해도 그는 페이소스가 있는 자신의 대중가요처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줄 알았다. 사실, 감정을 잘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예술작품은 꽤 근사해진다. 화가들조차 자기감정을 드러내는 일에 미숙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마 미술사에서 뭉크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을 적극적으로 노출한 화가는 없다. 뭉크는 자신의 슬픔과 고통과 절망과 우울을 고스란히 작업에 투사했다. 사실 뭉크만큼 가족의 죽음을 가까이서 목도한 화가도 드물다. 유.. 더보기 유진 누구나 멋진 풍경을 그리워한다. 수직 절벽 아래로 힘차게 쏟아지는 폭포와 안개 자욱한 연못을 에워싼 짙은 단풍 숲은 머물고 싶고 소유하고 싶다. 이발소 그림이나 달력 사진은 현실에 몸이 매여 있는 우리를 이런 곳으로 가장 친절하게 데려다준다. 그럼에도 늘 싸구려라는 누명을 벗지 못한다. 너무 진짜 같기만 해도 상투적이고, 진짜만 못해도 촌스럽다. 뻔한 구도와 조야한 색깔은 이런 인상에 한몫한다. 거기에 우리 눈이 오랫동안 길들여져 있는 풍경화의 전통도 이런 선입견을 부추긴다. 김병훈의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과연 아름다운 풍경을 달력 사진처럼 재현하면 안되는 것인가. 우리가 관념 속에서 기억하는 풍경과 실제로 가서 맞닥뜨리는 풍경의 오차 폭을 사진에서는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를 두고 그는 오랫동안 고.. 더보기 거부하기 힘든 판타지 내 인생의 첫 그림은 공중목욕탕 탈의실에 걸린 그림이었다. 숲 속에 아름다운 여자가 가로 길게 누워있고 여러 명의 아기 천사가 그 주변을 날아다니고 장난치는 모습이 담긴 복제화였다. 유년 시절 목욕을 끝내고 나른해진 심신의 상태는 그 그림을 더욱 환상적으로 보이게 했다. 그야말로 오랫동안 그 그림을 보는 재미에 홀딱 빠져있었다. 미술사를 공부하고 난 다음에 그 그림이 비너스와 큐피드들인 것을 알았지만, 그 감동은 유년만 못하다. 비너스 그림 중 가장 흥미로운 주제는 ‘비너스의 탄생’일 것이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의 성기가 바다에 떨어지고 거품이 일어나면서 그 속에서 비너스가 태어난다는 내용은 언제나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알렉상드르 카바넬이 그린 ‘비너스의 탄생’만큼 호의와 비판의 경계에 있는 .. 더보기 우리가 알던 도시 과거형은 단절이다. 알던 도시는 아는 도시와는 전혀 다른 말이다. 그것은 이미 사라져 버렸거나 아니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우리가 알던 도시’라는 제목으로 강홍구와 박진영이 기록한 도시들을 보여준다. 지진과 해일로 도시가 사라져버린 후쿠시마와 재개발로 몸살을 앓았던 은평 뉴타운은 원인은 다르지만 도시의 실종에 대해 묘하게 보는 이를 자극하는 공통점이 있다. 문제는 이 실종이 과거형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진행형을 낳는다는 데 있다. 두 작가의 작품 속에 사람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공사장의 철근더미나 폐허 속에 덩그러니 남은 산요 선풍기 등은 과거 그곳에 살았을 어떤 가족, 선풍기 바람을 쐬던 누군가의 운명에 대해 궁금하게 만든.. 더보기 무심한 멘토 현대작가들이 가장 존경하는 작가 1위, 20세기 미술 중 가장 중요한 작품 1위의 가장 강력한 후보는 뒤샹과 그의 변기 작품인 이다. “뒤샹 이후의 현대미술은 개념미술이다!”라는 선언이 나올 정도로 그가 현대미술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앤디 워홀은 물론 데미언 허스트를 비롯한 수많은 현대미술가들의 멘토가 바로 뒤샹인 것. 뒤샹은 1년에 회화 한 점만 그려주면 1만달러를 주겠다는 요청을 받는 등 뉴욕에서 더할 수 없는 명성을 얻게 되지만 1923년 겨우 36세의 나이에 일체의 예술 활동을 중단한다. 체스를 두기 위해서다. 그는 도서관 사서와 불어교사 알바로 최소한의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체스에 창조적 에너지를 소비했다. 그렇다고 예술작품을 제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보여주기 위해서나 먹고살기 위해서.. 더보기 두 명의 경찰관 사진 속에서는 경찰관이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둘의 제복이 완전히 다르다. 같은 기관의 제복이 이렇게 다를 수는 없으니 둘 중 하나는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 공무 수행 중이 아니라 뭔가 연출된 상황인 것인가. 아니면 이들 모두가 제복으로 위장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일단 표면상의 의미 구조가 무너지는 순간, 사진은 수많은 의심들로 가득 찬다. 그렇다고 명쾌한 단서를 던져 주지도 않는다. 그것은 보는 이를 한없이 혼란스럽게 만들고 싶은 작가의 눈속임일 수도 있고, 아니면 무언가를 더 말해 줄 여지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실제로 사진 속 한 명은 영화 속에서 경찰을 맡은 배우이고, 다른 한 명은 이 영화의 촬영 현장에서 질서 유지를 하고 있는 실제 경찰관이다. .. 더보기 성모자상을 흥미롭게 감상하는 법 서구 미술관에 가면 성모자상이 넘쳐난다. 그래서인지 모자관계의 가장 이상적인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이 도상은 더 이상 눈길을 사로잡지 못한다. 성스러운 모자관계,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헌신적인 사랑 등등의 레토릭이 일종의 클리셰(Cliche·진부하고 상투적인 표현)로 전락한 것이다. 그런데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모자상에 흥미로운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어머니·아이 관계의 이면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해볼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어떤 사람에겐 엄마가 불안한 존재이고, 알 수 없는 여자이며, 자식을 돌보지 않는 파렴치한 인간일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베네치아 르네상스 최성기의 화가 조반니 벨리니는 성모자상을 많이 그린 화가 중 하나다. 그는 왜 그렇게 성모자상에 집착했던 것일까? 먼저 벨리니의 .. 더보기 이동갈비 이동갈비라는 말, 작업의 제목치고는 좀 웃긴다. 그렇다고 경기도 이동면에서 유래했다는 갈빗집만을 소개하지도 않는다. 대신 갈비를 핑계 삼아 ‘이동’을 요구하는 우리 시대의 여가 활용법을 다룬다. 그런데 갈비를 먹기 위해 찾아가는 이 장소들의 구조가 그렇게 간단치는 않다. 일단 관광버스 수십대가 손님을 싣고 와도 끄떡없을 넓은 주차장과 식당을 갖췄다. 단체부터 연인까지 다양한 취향을 위해, 노래가 가능한 별실이나 오붓한 정자 같은 특화된 공간 구성도 필수다. 여기에 맛보다 더 중요한 핵심은 바로 식탁까지 경치를 배달해준다는 점이다. 실내에 굵은 나무가 통째로 자라는 것은 기본이고, 식당 밖 풍경이 너무 밋밋하다면 수십미터짜리 인공폭포를 만들기도 한다. 이런 밥집들은 거의가 도심 밖에 있다. 외곽이라지만 당.. 더보기 정원사 모네가 창조한 수련 절경은 시가 되지 않는다고 어느 시인은 말했다. 절경에 인간 냄새가 배어 있지 않기 때문이란다. 모네 역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정원을 몹시 사랑해 부인의 안부는 묻지 않고 꽃들의 안녕을 먼저 물었던 모네야말로 평생 아름다운 풍경을 가꾸고 사랑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자기가 만든 정원을 자신의 눈과 손과 그림 속에 영원히 각인시켰다. 시간과 계절의 추이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정원의 모습을 담았는데, 인상주의자답게 사물이 빛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탐색했던 것이다. 사실 모네는 쉰이 될 때까지 가난하게 살았다. 그렇지만 남들이 부러워할 호사취미를 포기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바로 여행, 요리, 정원이었다. 그리고 결국 1883년 파리에서 70㎞ 떨어진 시골 지베르니로 이사한 몇 년 후 집을 구입하면.. 더보기 제곱미터 새집을 짓고 나서 아직 담장을 두르지 않은 시골 이모 집에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마당을 내다보던 이모가 이렇게 탄식했다. “귀한 흙 남의 밭으로 다 쓸려가겠네.” 평생 논밭을 일궈 살아온 이들에게는 한 줌 흙조차도 허투루 나눠줄 수 없는 생명의 텃밭이었을 것이다. 분신과도 같은 그 흙덩이가 모여 땅이 되고, 그 땅이 꺼지거나 솟아나 산수를 이룬다. 풍경이 애달픈 것은 이렇듯 그 흙에 유전자처럼 새겨진 뭇 생명들의 사연 때문이다. 그러나 풍경 사진 속에서 이런 애틋함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대체적으로 그것들은 너무 아름답거나 낭만적이어서 어머니가 만지던 흙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특히 카메라야말로 지극히 서양적인 시각화의 도구라고 생각하는 김윤호에게 사진이 보여주는 풍경은 대개가 눈속임이다. 이런 카메라.. 더보기 내 친구의 서울은 무엇인가 요즘 세계에서 가장 ‘핫’한 도시가 서울? 적어도 내 주변 건축가들 사이에서는 그렇다. 근래 들어 하루가 멀다 하고 내가 아는 외국의 건축가들이 서울을 찾는다. 특별한 목적이 아니면 오기 힘든 동북아 끝에 위치해 있건만 도쿄나 베이징, 홍콩 온 길에 일부러 들렀다고 하니 예삿일이 아니다. 또한 밖에 나가 그곳 건축가들과 만나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서울에 관한 게 대단히 많아졌다. 전시회나 심포지엄을 해외에서 개최해 보면 전례 없이 많은 현지인들이 모여 서울을 논한다. 전과 확연히 다르다. 한류의 영향?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현실에 냉소적이기 쉬운 건축가들이 그런 것으로 영향받지 않는다. 서울의 재발견이라고 해야 옳다. 사실 서울은 그동안 너무도 저평가되어왔다. 건축가들이지만 도시에서 정작 그들이 좋아하는.. 더보기 진지함을 비웃다 미술사는 웃는 얼굴을 기록하지 않았다. 웃음은 경박하고 천한 것이며, 영원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에서 금서가 된 희극(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이 희극일 것이라는 가정)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늙은 수도사 호르헤는 웃음을 싫어했는데, 웃음이 두려움을 없애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없애면 악마의 존재를 무시하게 되고, 그러면 신앙도 존재할 수 없다는 논리다. 그렇게 금서에 묻힌 독 때문에 수도사들이 죽어나가는 장면은 신앙이 공포에 의해 유지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미소가 아닌 깔깔 웃는 두상을 만든 작가가 있다. 그뿐 아니다. 하품하는 얼굴, 찡그린 얼굴, 아이처럼 울고 있는 얼굴, 엄청 화가 난 얼굴 등 온갖 우스꽝스러운 얼굴표정이 조각 작품으.. 더보기 이전 1 ··· 5 6 7 8 9 10 11 ··· 2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