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 썸네일형 리스트형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베이컨은 항상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살아있다는 것을 정육점의 고기와 같이 비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고통받는 인간은 동물이고, 고통받는 동물은 인간”이라고 했던 베이컨은 자화상을 그리는 것도 모자라 실제 소 갈빗대를 들고 사진을 찍기까지 했다. 스스로 잔혹한 초상이 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루시앙 프로이트(프로이트의 손자)와 더불어 영국 구상미술의 독보적 존재였던 프랜시스 베이컨은 동명인 근대경험론 철학의 선구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후손이다. 중학교 중퇴 정도의 학력을 가진 그가 엄청난 동물적 영리함과 감각적 지성의 소유자라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다. 하지만 조상의 유전자도 무시할 수 없지 않은가? 베이컨은 엄마 옷을 입고 화장을 하다가 아버지한테 쫓겨나 속기사, .. 더보기 수정아파트 수정아파트는 작고 낡은 아파트다. 도시개발 바람을 타던 1969년 부산의 대표적인 서민 아파트로 들어섰다. 세월이 흘러 연탄보일러가 도시가스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화장실은 복도 끝 공용을 써야 하고 부엌은 어정쩡한 입식 구조를 하고 있다. 이제 이런 구식의 원조 원룸에는 대개가 아파트만큼이나 나이가 꽉 찬 주민들이 살고 있다. 남 눈치 안 보고 맘 편히 내 집 살이를 택한 어르신들이나 싼 세를 찾아 중심부에서 밀려난 이들이 둥지를 튼다. 윤창수는 2011년부터 사진기를 들고 이 열일곱 동짜리 아파트를 드나들었다. 아파트와 같은 해에 태어나 이십대의 청춘을 그곳에 부렸던 인연이 처음에는 그를 그곳에 데리고 갔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기억이 버무려진 긴 오후의 우수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다 정이 든 할머니가.. 더보기 잃어버린 미소 ‘아르카익 스마일’ 내 서재에 걸려있는 미륵반가사유상의 미소는 언제나 질문하게 한다. 도대체 저 묘연한 미소의 근원과 정체는 무엇인가? 물론 그 미소는 학구적으로는 해석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왠지 부족하다. 때로는 문제를 풀지 않는 편이 옳다.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기원전 2세기쯤 알렉산더 대왕의 간다라 정벌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반가사유상을 비롯해 석굴암의 본존불, 서산 마애삼존불의 미소는 고대 그리스의 아르카익 스마일과 닮아있다. 분명 최초의 불상들은 그리스 조각들처럼 서구인의 얼굴을 그대로 보여준다. 헤어스타일과 의상도 그리스식이다. 이들은 실크로드를 따라 한반도까지 전파되었으리라. 고대 그리스 미술은 크게 네 시기로 구분하는데, 기하학적 시기(B.C. 1100~800년), 아르카익기(B.C. 600~480년).. 더보기 이스탄불의 눈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전시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을 잘 모르는 이조차도 카르티에 브레송은 기억할 만큼 그는 이제 국내에서도 두꺼운 관객층을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그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아라 귈레르 전시 또한 놓쳐서는 안된다. 비록 이름은 우리에게 생소하지만, 아라 귈레르는 터키를 대표하는 국민 사진가다. 자신을 매그넘 회원으로 추천해 준 20년 터울의 카르티에 브레송과 깊은 우정을 나눈 사이이기도 하다. 아라 귈레르는 포토저널리스트로서 세상 여기저기를 누비며 무려 200만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이스탄불의 눈’이라는 별명답게 그의 대표작은 단연코 그가 태어나고 살았던 도시 이스탄불의 풍경이다. 아라 귈레르는 1928년에 태어나 사진가가 되기로 결심한 19.. 더보기 마스터플랜의 망령 1955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세워진 ‘프루이트이고’라는 2870가구수의 주거단지는 세워지기 이전부터 건축매체로부터 최고의 아파트로 칭송받았다. 이 단지는 일본계 미국인 건축가 미노루 야마자키(그는 2001년 테러로 무너진 뉴욕 무역센터도 설계했다)의 설계로, 그 당시 세계 건축계를 이끈 르 코르뷔제와 국제건축가회의(CIAM)가 주창한 신도시에 대한 마스터플랜 강령을 충실히 추종하여 ‘미래 도시의 모범’으로도 불렸다. 합리와 이성을 절대가치로 믿는 모더니즘을 시대정신으로 가진 그 강령은, 7만여평의 땅 위에 11층의 33개동의 아파트를 균일하게 배치시키며 흑인과 백인 가구로 나눈 후 모든 공간을 기능과 효율로 재단하여 분류하고 계급화시켰다. 보랏빛 꿈을 약속한 마스터플랜은 마치 전지전능이었다. 우리의 미.. 더보기 꽃보다 어리석음 초현실주의자들이 흠모한 두 사람이 있다. 프로이트와 보슈다. 당시 지식인과 예술가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프로이트는 동시대 사람이었지만, 히에로니무스 보슈는 500년 전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북구 르네상스의 거장이었다. 인간의 무의식과 잠재의식을 악몽처럼 그린 보슈는 여행을 전혀 하지 않았고, 집 밖에 나오는 일도 없었다. 거의 은둔자였던 보슈는 마치 악마와 교통하듯이 지옥의 세계를 잘 알고 있었다. 대표작인 ‘쾌락의 정원’과 ‘최후의 심판’은 그가 가진 상상의 세계가 얼마나 엽기적이고 불가사의하고 세기말적인지 보여준다. 중세 말은 잦은 천재지변과 전염병, 전쟁, 반란 등 세기말적인 징후가 가득한 시기였다. 이 시기를 통과한 보슈는 세상은 진정한 안식처가 아니라 험난한 순례를 거쳐야만 하는.. 더보기 미래고고학 워낙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 미래에 대한 온갖 예측이 난무한다. 분명한 건 우리가 지금 함께하고 있는 숱한 직업, 음식, 복장, 풍경, 날씨 등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언어와 인종까지도. 그 소멸한 대상의 상당수는 멀고 가까운 미래에 어쩌면 박물관에서나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라진 문화를 유물로 만들 때 힘의 논리도 작용할까. 과거 아프리카와 이집트 문명을 기꺼이 자신들의 안방으로 들여온 서구처럼. 더 극단적으로는 누군가는 그 박물관 안에서 전통을 재현한다는 명분으로 살아가게 될까. 파리에 살고 있는 이대성의 ‘미래고고학’은 이처럼 조금은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몽골 풍경이다. 하필 왜 몽골일까. 급속한 사막화와 도시화로 유목의 전통이 거의 멈춰버린 이곳이야말로 인류.. 더보기 나는 베일을 사랑해요! 어쩌면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안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이 말한 것에 의해서보다는 침묵한 것에 의해서 그를 더 잘 알게 되지 않을까. 마그리트는 좀체 유년 시절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얼마 되지 않는 추억들도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매우 환상적인 것들로 채워나갔다. 이처럼 의식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그의 기억들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특히 베일을 씌운 그림들이 그렇다. 마그리트의 ‘베일’에 대해 추측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이렇다. 유년 시절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이미지로부터 왔다는 것. 우울증이었던 어머니가 야밤에 몸을 강에 던져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13살의 마그리트가 본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잠옷으로 가려진 얼굴과 신발을 거꾸로 신은 몸이었다. 어머니가 스스로 택한 죽음을 보지 않으려고 .. 더보기 시인과 사진가의 우정 일본에서 소포가 왔다. 처음 보는 이름이다. 겉봉을 열자 보자기가 나온다. 소탈한 무명천 보자기인데 마치 이제 막 묶어서 보낸 것처럼 흐트러짐 없이 반듯하다. 보자기 안에는 원고지에 붓펜으로 쓴 편지 한 통과 흑백 사진들이 담겨 있다. 빼어난 필체의 편지는 곡진하고, 프린트는 한 점 한 점 정교하다. 혼자였는데도 보자기를 풀 때부터 마지막 사진을 덮을 때까지 예를 갖추듯 조심스러웠다. 보낸 이와 사진 속 주인공이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만 같았다. 12년 전 잡지사에서 일할 때, 사진가 권철은 일본 한센병 시인 텟짱의 사연을 이렇듯 정성스럽게 전해왔다. 텟짱의 본명은 사쿠라이 데쓰오. 열여덟 살 때인 1941년 한센병 요양원에 강제 수용된 뒤 2011년 생을 등지고서야 고향에 묻힌 한센병 회복자. 요양원.. 더보기 양들의 침묵 희생양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대신 뒤집어쓴 사람’을 비유한다. 희생양 덕분에 진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쉽게 잊혀져 배후의 인물로 남아있게 된다. 이렇듯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 사소한 희생을 치른다는 희생양의 메커니즘에는 음모와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기 마련이다. 신화학자 프레이저는 “우리 죄와 고통을 다른 어떤 존재에게 떠넘겨 우리 대신 감당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미개인에게는 익숙한 사고방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찌 이것이 미개인에게만 있겠는가? 오늘날 더 미묘하고 저열한 방식으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희생제의에서 왜 양인가? 아마도 동물 중에 가장 인간적인 것이 채택되었을 것이다. 죽여서는 안되는 순하디 순한 동물을 바쳐야 그런 살해행위가 끔찍하게 여겨진다. 그만큼 드.. 더보기 밤에 밤은 천의 얼굴이다. 그때는 한없이 울적거리다가도 어느 한순간 생각이 가볍고 명료해진다. 깊은 어둠 속에서 마음은 무서움과 그리움 사이를 줄타기도 한다. 단지 해가 사라진 시간이라고 하기에 밤은 너무도 묘해서 달밤은 해가 뜬 낮과는 전혀 다른 딴 세상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윤아미가 밤을 두 개의 얼굴을 지닌 자신에게 빗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작가에게 밤은 숨겨진 또 다른 내가 출현하는 시간이다. 감정이든 사람이든 숨길 때는 뭔가 사연이 있기 마련. 너무 아끼거나 남 앞에 드러내기 멋쩍을 때 우리는 은연중에 감춰 버릇한다. 그러므로 윤아미가 밤에 만나는, 혹은 밤에만 꺼내놓는 자신은 공인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때로는 상상의 세계에 사는 아이처럼 엉뚱하고 짓궂기도 하고 .. 더보기 달리가 그린 솔(Soul) 푸드 어릴 적 요리사를 꿈꾸었던 달리는 부엌을 동경했다. 엄격한 집안에서 자란 달리에게 부엌은 금지령이 내려진, 그럴수록 매혹적으로 다가온 신비의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여자들로 북적이고 활기 넘치는 부엌에 잠입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며 늘 그곳을 서성거리곤 했다. 부엌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죄악이라고 배웠던 달리는 그곳에서 일하는 육감적인 하녀들의 땀내, 흩어진 포도송이, 끓고 있는 기름, 벗겨진 토끼의 가죽, 마요네즈를 뿌린 게 다리 등의 열기와 향기를 음미했다. 추억은 언제나 향기로 각인되는 것이다! 특별히 달리는 식사를 신을 받아들이는 성찬식처럼 신비롭고 거룩한 행위로 여겼다. 더군다나 그는 작업에 몰두할 때 빵과 물만을 먹으면서 지냈다. 마치 그림 그리는 행위를 예수의 고행과 동일시했.. 더보기 포토제닉 드로잉 예쁘다 이 꽃. 아니 더 정확하게는 꽃 사진이. 꽃을 너무 꽃같이 찍은 사진을 두고 예쁘다는 말을 하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불멸의 생명력을 가졌다 한들 향기도 입체감도 없이 인화지 위에 핀 꽃이 어찌 실물보다 매력적일 수 있을까. 그러므로 사진이든 그림이든 그 속에 핀 꽃은 진짜 꽃과는 다른 매력을 가져야만 한다. 사진가 구성수의 야생화는 얼핏 보면 수수하지만 꽤 복잡한 과정을 거쳐 자신만의 자태의 뽐낸다. 우선 찰흙판에 꽃을 얹고 고무판으로 눌러 음각을 만든다. 이 위에 다시 석고시멘트를 부어 굳히면 화석처럼 꽃의 가느다란 형태까지가 모두 살아있는 양각 부조가 된다. 이 위에 본래 야생화가 지닌 색감으로 색을 칠한 뒤 사진으로 촬영한다. 찰흙판에 눌린 꽃은 꽃밥이며 꽃잎, 이파리들이 독특한 모양으로 .. 더보기 집의 이름, 인문정신의 출발점 내가 운영하는 건축사무소의 이름은 ‘이로재(履露齋)’이다. 뜻으로는 ‘이슬을 밟는 집’인데 에 연유한다. 어느 옛날 노부를 모시고 사는 한 선비가 부친이 아침에 일어나시기 전에 겉옷을 걸치고 부친 처소에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밖으로 나오시면 따뜻해진 겉옷을 건네드렸다는 이야기다. 새벽녘에 이슬 앉은 마당을 밟아야 하는 집 ‘이로재’를 의역하면, 효성이 지극한 가난한 선비가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1990년대 초, 의 저자인 유홍준 교수가 내게 집 설계를 의뢰했을 때는 그 밀리언셀러의 책이 나오기 전이어서 학자 신분에 집 지을 돈이 넉넉할 수 없었다. 내게 준 설계비도 충분치 않다고 여겼는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200년 된 현판을 답례로 주었는데, 내.. 더보기 [기고]새해, 분노·절망 씻겨줄 예술을 기다리며 2015년 새해가 밝았다. 2014년의 어두운 그림자가 마음에서 채 씻겨나가기도 전에 2015년의 뜨거운 해를 다시 마음으로 받았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 걸러내지 못한 것들이 계속 쌓이면서 두꺼운 퇴적층을 형성한다. 분노를 용서로 바꾸지 못하면 더 깊은 분노가 쌓이고, 절망을 희망으로 대체하지 못하면 희망의 싹은 없어진다. 우리는 2014년의 분노와 절망을 깨끗히 씻어내고 2015년을 맞이했는가? 풍성했던 잎을 떨궈야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나무처럼 지난 감정의 묵은 때를 벗겨야만 옹골찬 미래를 열 수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2014년의 감정을 걸러내고 정화해야 한다. 그렇게 감정의 응어리를 푸는 데 예술만 한 것이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혼을 울리는 예술이다. 영혼.. 더보기 손들의 춤 더 이상 손은 몸의 한 부분이 아니다. 이 손들은 무엇을 붙잡으려 하는 것일까? 무엇을 어루만지려 하는 것일까?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사실, 이 손들은 전혀 접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어떤 각도에서 보면 살짝 닿아 있고, 어떤 부분에서 보면 친밀하게 맞닿아 있다. 저 부유하는 아련한 손들은 시선과 응시라는 내적 필연성에 의해 일체가 되어 있는 동시에, 영원히 합일되지 못할 운명에 대한 암시 같기도 하다. 로댕의 ‘대성당’은 원래 분수장식을 위해 제작되었다. 휘어진 활 모양의 두 손 사이로 물이 솟아오르도록 계획되어 있었던 것. 처음에는 ‘언약의 궤’라는 이름을 붙였으나, 나중에는 ‘대성당’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단순한 구성에서 느껴지는 기념비적인 분위기가 성스러운 감정을 갖게 한다는.. 더보기 그 겨울, 한강 몹시 흐린 날이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우울일까. 약속이라도 한 듯 흐린 눈발 속 행인들은 죄다 어두운 무색옷을 걸쳤다. 옷의 두께가 시린 생을 다 녹이지는 못하는지 몸은 계속해서 움츠러들고 있다. 숨을 곳도, 가려줄 곳도 없는 탁 트인 한강 위로 귓불을 휘감는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지금의 한강대교인 한강인도교 위에서 촬영했을 것이다. 사실은 기막힌 구도 덕분이겠지만, 사진 속 풍경이 하도 추워서 저 멀리 한강철교가 정말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저 멀리 점점이 사라지는 행렬은 초현실적인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저 뿌연 풍경을 통과해야만 하는 무겁고 축축하고 어두운 겨울 날씨는 엄연한 현실이다. 눈 위로는 그 현실에 순응한 혹은 거역한 발자국들이 .. 더보기 잃어버린 영혼, 안드레이 류블로프 알음알음 좋은 영화를 보기 위해 비디오테이프를 돌려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화가 선배로부터 건네받은 영화가 A 타르코프스키의 (1966)였다. 15세기 탁월한 성화를 남긴 러시아의 유명한 화가이자 수도사였던 안드레이 류블로프(1360~1430)를 소재로 한 영화다. 흑백영화는 전율 그 자체였고, 마치 천국의 열쇠를 쥔 사람처럼, 지인들에게 발설하고, 선물하고, 강권했다. 인생에서 이런 드문 만남은 일종의 ‘에피파니(Epiphany·신의 현현)’가 아닌가! 류블로프의 대표작 ‘성삼위일체’는 러시아 정교에서 최고로 손꼽는 이콘화다. 예수와 성가족을 그린 이콘(icon)은 기독교 예배를 위한 그림을 말하는데 주로 동방교회에서 예배를 위해 많이 사용되었다. 이 그림은 현재 러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수도원 중 하.. 더보기 암에 관한 백과사전식 해부 암은 환자와 가족 입장에서는 공포다. 이 공포는 극심한 통증, 끝없는 두려움, 슬픈 이별이라는 말들을 동반한다. 분명 몸 안에서 자라고 있는 세포지만, 내 몸의 일부라 하기에는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어 헛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 덩어리를 데리고 병원을 찾는다. 의술이라는 이름을 빌려 병원은 수술도 하고 처방도 하지만, 그 과정은 이성적이다 못해 차갑고 냉정하게만 느껴진다.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 병을 핑계 삼아 마음이 분열을 시작하는 이유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 의사에게 암은 무엇일까. 그것은 낱낱이 파헤쳐야만 하는 연구와 정복의 대상이다. 혹은 그 이상의 무엇이다. 외과의사 노상익은 자신의 블로그에 암의 모든 것을 기록한다. 수기로 써내려간 진단서를 비롯해 처방 내용, 환자의 병력, 수술 마지막 단계.. 더보기 조강지처도 섹시할 때가 있었다? 그리스 최고의 여신 헤라는 예술가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지 못했던 것 같다. 헤라를 그린 그림이 드물고 걸작이 없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조강지처라는 한계, 그러니까 더 이상 한 남자의 욕망을 자극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은 예술가들을 시큰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헤라는 질투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가정과 결혼의 수호신이다. 안정적인 가정과 결혼을 위해 바람기 많은 남편을 지키려다보니 질투가 가장 중요한 캐릭터가 된 것이다. 어쨌거나 헤라는 그리스라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제우스는 아름다운 헤라를 어떻게 유혹했을까? 그는 그녀를 품고 싶은 욕정에 이끌렸지만 무턱대고 덤벼들지는 않았다. 헤라의 연민을 자극하기 위해 비 맞은 한 마리 애처로운 새.. 더보기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2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