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은 어쩌면 동시대 우리의 일상에서는 멀어진 유물이다. 방에서 구들장을 들어내면서 아궁이가 사라졌고, 그 위에 자리 잡았던 가마솥도 부엌을 떠났다. 환경이 바뀌면 도구는 달라진다. 하지만 대가족의 세끼 식사를 감당해야 하는 큼직한 무쇠 가마솥이 부뚜막에 걸려 있던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직 있다.
임옥상, 가마솥은 어머니 어머니는 가마솥, 2010, 철, 70×70×120㎝
가마솥에서 구수하게 올라오는 밥 냄새를 맡으면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람들이 아직 있다. 쉽게 뜨거워지지 않지만 한번 뜨거워지면 쉽게 식지 않는 무쇠 가마솥만이 전해줄 수 있는 음식의 풍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직 있다. 그런 이들에게 가마솥 밥은 그리움이다. 몇몇 식당은 여전히 커다란 가마솥을 사용해서 밥을 짓고, 탕을 끓여 사람들의 추억 여행에 동행한다.
어느 날, 임옥상은 길에서 가마솥을 주웠다. 잔뜩 녹슨 채 길가에 버려진 가마솥을 보며 가마솥 근처를 떠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는 가마솥을 보면 어머니가 떠오르고,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마솥이 따라온다. 어머니는 늘 가마솥 앞에서, 밥을 달라면 밥을 해주시고, 죽을 달라면 죽을 쑤어 주시고, 고구마니 옥수수, 밤, 감자도 쪄주셨다. 곰국도 끓여 주고, 떡도 만들어 주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가마솥으로 생명을 키우셨다. 작가는 부뚜막을 떠나온 가마솥에 어머니 이야기를 담았다. 가마솥 곁에 머물면서(사실은 엄마 곁을 좀처럼 떠나지 않은 채) 맛난 것을 해 달라 보채던 시절에 대한 기억을 적었다. 그렇게 정리한 글귀로 기둥을 짓고 그 위에 가마솥을 올렸다. 철판을 레이저로 잘라내 만든 글기둥은 마치 아궁이의 불길처럼 용도를 다한 솥을 받쳐 일으켜 세웠다. 언제 길에 버려져 있었던가 싶게, 가마솥은 그 길 위에 다시 섰다.
글의 불기둥은 나도 모르게 그만 식어가던 부모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 불을 지핀다. 가마솥은 낡고, 혹여 사라진다 해도 부모와 자식 사이의 마음이 구시대 유물이 되지는 않을 터. 임옥상의 가마솥은 아마도, 사랑이다.
김지연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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