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계절이다. 부정선거를 심판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피 흘린 4·19 혁명이 56주년을 맞이했고, 4·13 총선은 민주주의가 후퇴해가는 현실에 경종을 울리며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어 선거혁명이라고 불린다. 56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은 여러 차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번 선거 결과를 보니 이제 피로써 권력을 심판하는 시대는 지나간 것 같다.
이우성 ‘정면을 응시하는 사람들’, 캔버스에 과슈, 259.1×569.6㎝
선거 과정에서 내가 흥미로웠던 것은 ‘시민의 눈’이라는 자발적인 시민 감시단의 활동이었다. 부정선거를 감시하기 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두 눈을 부릅 뜬” 이들의 활약은 여러 면에서 자극제가 되었다. 그들이 눈을 뜨고 지켜보지 않았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시민의 눈’을 보면서 이우성의 작품 ‘정면을 응시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높이가 259㎝로 꽤 큰 그림이라 그 앞에 서면 군중의 기운에 압도당하는 기분이 든다. 화면 속 사람들은 모두 정면을 응시하는데, 밝은 표정은 아니다. 군중 한가운데 서 있는 누군가는 ‘승리’라고 적은 머리띠를 둘러매고 있고, 앞열의 몇 사람은 타들어가는 불꽃을 손에 쥐고 있다. 거울을 들어 화면 앞에 서 있는 우리를 비추는 인물도 보인다. 그 거울을 통해 나도 군중 속으로 들어간다.
화면을 가득 메운 이들은 작가 또래인 20~30대 청년들로, 이들은 현재 불만을 분출 중이다. 작가는 20대 시절, 청년세대가 사회 구조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느끼는 부조리함, 사회적 약자로서 체험하는 불안, 좌절의 나날들을 화면에 담았는데, 이 그림도 그런 문제의식을 다루던 시기에 완성했다. 그는 “이 불만은 나의 얘기면서 너의 얘기이기도 해”라고 말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적 고민과 불만을 품고 살지만 그 고민과 불만의 원인이 모두 개인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공유한다. 정당한 불만을 분출하는 이 시대 청년 군중의 집단 초상은 그렇게 두 눈 부릅뜨고 우리를 응시한다.
김지연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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