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들어서면 아홉 개의 모니터에서 아홉 사람의 손이 움직인다. 양손을 꼭 쥐기도 하고, 비비기도 하고 주먹을 쥐기도 하고 박수를 치기도 한다. 프랑스 작가 말릭 오하니안은 손의 동작과 연동해 그들 손이 만드는 박수 소리를 리드미컬하게 편집해 전시장을 채웠다. 경쾌한 박수 소리가 있으니 손동작이 흥겹게 보이는데, 화면에 집중하다보면 거칠고 투박한 손등이며 손가락 마디가 눈에 들어온다,
손의 주인공들은 아르메니아의 실직 노동자들이다. 1991년 독립을 선언한 이후 아르메니아는 시장경제로 전환을 시작하는데, 대량실업, 빈곤, 양극화 현상을 겪으면서도 2004년에 이르면 1990년대 수준으로 경기를 회복한다. 2002년 무렵부터는 한 해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로 경기가 회복되었지만, 생산 시스템이 변하고 공장이 줄어들면서 숙련된 노동자들은 실업 이후 쉽게 직장을 찾지 못했다.
말릭 오하니안은 인력시장에서 ‘취업’을 기다리는 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손을 보았다. 손은 말, 눈과 더불어 사람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중요한 기관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의 손짓이 말보다, 눈빛보다 더 풍부한 감정을 전달하기도 한다.
말릭 오하니안, 손, 2002, 영상, 4분20초
손에는 그 사람이 걸어온 삶의 궤적이 새겨지게 마련이다. 노동으로 굵어진 손마디, 거친 피부 등 눈에 보이는 특징도 있지만 오랜 세월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서 규칙적인 속도에 맞춰 물건을 조립해 왔던 이들의 손은 일하던 시절의 속도에 길들여져 있었다.
그는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는 박수의 리듬을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 움직이던 속도에 맞춰 편집했다. 리듬을 타며 흥겨운 감정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이던 다채로운 이 손짓들이 그 리듬에 숨겨진 의미를 듣는 순간, 공장에서 업무 속도에 맞춰 자신의 일에 집중했던 노동자의 손으로 보인다. 동시에 어서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일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세상으로 전하는 수신호 같기도 하다.
김지연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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