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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괴물들이 사는 나라



지방이라는 말 앞에서는 괜히 목울대가 촉촉해진다. 이 표현 자체가 서울을 기준으로 한 분류일 터이므로 어쩔 수 없이 중앙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비운의 느낌을 풍기는 탓이다. 더 노골적으로 말해 대도시보다는 낙후된 이곳은 주5일제 이후로 화려한 아웃도어 복장으로 치장한 도회지 사람들이 다녀가는 펜션이나 캠핑장의 주 무대라는 뜻으로도 통한다. 그 지방이 한때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힘을 쏟은 것이 캐릭터 사업이다. 금산에서는 인삼이, 안흥에서는 찐빵이, 단양에서는 온달과 평강 등이 지역을 대표하는 식이다. 자신들만의 특산물이나 전통을 전국에 널리 알려 더 이상 서울의 변방이 아님을 선언하기 위함이니 이 캐릭터가 가지는 역할은 꽤 묵직하다. 그렇다고 이 무게감이 물리적 크기와 비례하는 것은 아닐 텐데 이 캐릭터들은 국도를 지나가다가도 눈에 띌 만큼 일단 몹시 크다.

그런데 곰곰이 살펴보면 은근 캐릭터마다 개성보다는 닮은 구석이 더 많다. 일단 찐빵이든, 인삼이든 죄다 사람 모양을 하고 있다. 이름도 바름이나 해오미 등 88올림픽의 호돌이 이후 유행하게 된 ‘이’자 돌림이 많다. 인물 캐릭터조차도 모두가 큰 머리에 왕눈이를 한 ‘귀요미’가 태반이다. 더 슬픈 건 그 캐릭터들이 놓여있는 장소와의 부조화다. 호숫가 한가운데 혹은 바다를 배경으로 한 밭고랑 어디쯤에서 이 캐릭터들은 귀엽고 큼지막하게 뜬금없는 존재감을 발한다. 마치 이곳이 소외받은 지방이라는 적나라한 표식처럼.

전국이 대도시의 테마파크로 변해가는 과정을 기록해오고 있는 박정민의 ‘캐릭터라이즈드’는 이 역설적 풍경에 주목한 작업이다. 초상사진처럼 캐릭터에만 주목한 사진과 그 캐릭터가 놓인 현실을 한 쌍으로 보여주는 작업을 보다보면 지방이라는 말이 던지는 슬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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