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정 _ 전시기획자
부끄럽게도
그곳에 한번도 다녀오지 못했다. 다녀온 이들의 말과 사진을 통해 풍문처럼 듣고 보았을 뿐이다. 처음부터 가장 생경했던 건 풍문의
주인공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사실이었다. 자식 다 키워 타지로 떠나보내고, 밭에서 나고 자란 것들만으로도 살림이 충분한
어르신들이 아쉬울 게 뭐가 있을까. 그저 사는 날까지 자식들 병수발이나 시키지 않게 건강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 말고는. 그렇게 더
바랄 게 없는 분들이 겨울철 아랫목을 마다하고, 봄날 파종도 미루고 그야말로 사생결단으로 뭔가를 반대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몸이 쑤시는 날조차도 습관처럼 그냥 아까워서 100W짜리 전기장판도 두어 번은 망설이다 켰을 이분들한테 765㎸짜리 송전탑을
세운다는 것은 그야말로 까무러칠 일이다. 단순히 누군가의 에너지 소비를 위해 길을 터줘야 한다는 억울한 차원이 아니라 땅에 해서는
안되는 그야말로 경우 없는 짓인 셈이다. 어르신들의 뜨거운 저항은 땅에서 나고 자란 분들의 본능적인 몸짓이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면 벌을 받는다고 말하려던 그분들의 농성장들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끝내 철거되었다. 꽃무늬 버선에 분홍 차렵이불보다도
고운 할머니들은 그렇게 진달래처럼 스러져 버렸다. 어떤 사진들은 사진 자체에 대해 차마 말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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