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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웃음


오진령, 웃음 02


축구 골대에 휘장처럼 커다란 천을 두른다. 2.5m 정도의 골대 높이를 넘길 수 있는 천은 그 자체로도 꽤 무겁고 크다. 한쪽 골대에는 검은색, 맞은편에는 흰색 천이 둘러진다. 천에는 구멍들이 여러 개 나있다.

이제 당신은 이 무대에 초대받은 손님이다. 규칙은 간단하다. 원하는 색깔의 천으로 가서 원하는 구멍에 손과 얼굴을 내밀면 된다. 그리고 웃는다. 다만 진심으로 웃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요구다. 도대체 나는 언제 어떤 이유로 웃었던가.

해는 중천에 떠서 스포트라이트처럼 얼굴을 환하게 비춘다. 마치 소설 <이방인>의 뫼르소에게 쏟아지는 태양처럼. 원치 않아도 선택한 무대에 서면 눈부신 태양과 마주하게 되어 있다. 그 태양 아래에서 내 웃음의 기억 혹은 웃음이라는 행위 자체와 마주한다. 태양의 위치는 계절과 시간에 따라 바뀌고, 축구 골대 또한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이 촬영 무대와 초대 손님은 매번 바뀐다. 콧물이 훌쩍거릴 만큼 추운 날이나 머리가 어지러울 만큼 더운 날이 되기도 한다.

흰색 혹은 검은 바탕에 사람들이 그저 웃고 있을 뿐인 오진령의 ‘웃음’ 작업은 들여다볼수록 무서운 구석이 있다. 그것은 웃음의 미학이라거나 인생이라는 무대에 대해 탐색한다는 식의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무게감이 있다.

만약 누군가가 세상과 하직하면서 웃는다면 이것은 이 세상을 향한 것인가 아니면 소멸을 향한 것인가. 진한 웃음 끝에 찾아오는 적막은 공허일까 아니면 텅 빈 깨달음의 순간일까. 웃음의 다양한 결과 색들은 결국 실존의 문제와 닿는다. 날아갈 듯 가벼운 웃음조차도 무게를 갖는 이유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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