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지금 산꼭대기에 있다. 늘 이곳에서 머무는 건지, 어쩌다 한 번씩 올라오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에게 이 상황은 익숙한 것 같다. 한쪽 무릎을 꿇고 바위에 살짝 앉은 모습이 불안해 보이기는 해도 어색하지는 않다. 벗어진 이마에는 주름이 가득하고, 흰머리도 보이지만, 제법 잘 빗어 넘긴 단정한 머리에, 청록빛이 살짝 도는 줄무늬 양복을 말끔하게 입고, 센스 있게 앞코가 살짝 뾰족한 구두를 신은 그는 추레하지 않다. 뉴욕 월스트리트의 증권맨처럼 세련됐다.
다나 슈츠, 괴물을 닦다(Washing Monsters), 2018, 캔버스에 유채, 240×223㎝, ⓒ다나 슈츠, 펫젤갤러리
살짝 삐끗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테지만 걱정은 접어두어도 되겠다. 발 앞에 양동이를 두고, 양손에 쥔 흰 수건으로 ‘괴물’을 씻기고 있는 이 ‘댄디맨’은 거대한 손의 보호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말하자면 그는 지금 괴물들을 돌보는 중이고, 괴물들은 그를 보호하는 중이다.
무엇인가 두려운 걸까. 괴물을 닦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그는 고개를 돌린 채 축 처진 눈으로 등 너머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를 온전히 감싼 괴물의 손은 안전하긴 해도 안락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보호받는 이의 모습이라기에는 두려운 눈빛에 체념한 표정이 두드러지니, 지금 그는 편안하지 않은 것 같다.
자기 의지로 이 손을 선택했다 해도, 이제는 자기 의지로 이 손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처음 괴물을 만나고, 거래를 시작했을 때, 그는 산꼭대기에 훌쩍 올라서는 기쁨을 누렸을 것이다. 뭔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땐, 이미 늦은 뒤였을 것이다. 이제 와서 괴물의 손을 치운다면, 그는 정상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 거다. 아마도 목숨을 잃겠지. 그래서 차라리 괴물과 하나 되는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거품 속에는 여전히 무지개가 일렁거리고, 괴물과 신사의 공조는 멈출 수 없다.
<김지연 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