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임명된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2015년 한 칼럼을 통해 “관장 공모 형식은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술관에 관장이 꼭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역량 있는 적임자가 응모할 수 없는 구조”라고 썼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을 공모로 뽑는 현행 제도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한 셈이다.
하지만 그는 불과 3년 만에 자신의 발언을 뒤집었다. 정권이 바뀌자 없애야 한다던 관장 공모에 나선 모순을 드러냈고, 제도 자체를 ‘촌스럽다’고까지 한 소신은 온데간데없이 임명장을 받았다. 윤 관장은 같은 칼럼에서 당시 관장 선임을 차일피일 미루던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해 인사 문제를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했다며 질타하기도 했다. 한데 문체부는 이번에도 인사 잡음을 냈다. 공직자의 최소 기준인 역량평가를 건너뛰려다 이미 속으로 정해놓은 ‘코드 인사’를 밀어주려 한다는 논란에 휩싸였고, 역량평가를 통과한 후보가 있음에도 탈락한 이들에게 재평가라는 혜택을 줘 특혜 시비가 일었다. 그 중심에는 윤 관장이 있었다.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1988). ‘다다익선’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상징이지만 1년째 꺼져 있다. 문체부는 지난 1일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임명했으나 불공정 특혜 및 정권 코드 논란으로 시작부터 어둡다. ⓒ 국립현대미술관
윤 관장은 잡음의 배경인 지금의 문체부는 나무라지 않았다. 특혜를 거부하지도, 석연치 않은 인선 과정에서 발을 빼지도 않았다. 이와 같은 처신은 부조리와 불평등, 반민주적인 것에 함몰되는 세태를 꾸짖던 진보 지식인으로서의 위치와 가깝지 않다. 2002년 발간한 비평서 <미술본색>에서 미술계의 구조적 문제들을 역설적으로 비판하던 준엄한 평론가와도 거리가 있다.
예전 같으면 진영, 색깔, 코드, 특혜라는 단어만 들어도 버럭했을 그가 침묵으로 넘겼다는 점은 2013년 한 글에서 패거리 의식과 인맥 제일주의를 미술계의 고질적 병폐이자 ‘근친상간의 구조’라며 격하게 표현한 예와 상반된다. 결과적으로 당착이라고밖에 볼 수 없어 안타깝다.
윤 관장이 한국미술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해왔지만, 그럼에도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서 적임자인지는 의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주로 동시대 미술의 최전선을 다루는 데 비해 그는 근대미술 이론가에 가깝기 때문이다. 또 미술관장 경험이 없어 정책 및 경영 능력도 검증되지 않았고, 더구나 첫 역량평가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문체부는 공정·공평해야 할 기회를 갖가지 의혹, 논란으로 채웠다. 미술인들이 그런 문체부를 신뢰할 수 있을까. 윤 관장이 역량평가를 두 번 받았다는 사실도 끝내 문체부가 숨기려 했다는 언론보도가 사실이라면 미술인들의 어떤 비난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미술인들은 부도덕, 불의한 세상과 부당한 권력에 맞선 민중적 사고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윤관장에게도 스스로 떳떳했는지 되물을 것이다. ‘한국에서 줄 없이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것인가’라던 <미술본색>에서의 역설이 실은 타자화한 본인의 민낯이었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안타깝다. 미술계의 갖은 연(緣)을 적폐로 규정하며 작가들의 의식 부재와 속물근성을 지적해온 그의 진실성에 금이 간 것이, 불합리함의 타파를 통한 참다운 민주주의 실현 및 사회변혁을 담은 그동안의 말과 글의 신뢰성에 의문을 가지게끔 한 행태가. 이제 윤 관장은 이런 안타까움, 의혹과 비판을 불식시킬 만큼 관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만 한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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