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그 겨울, 한강

한영수, 한강, 1956~1958년 사이 추정


몹시 흐린 날이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우울일까. 약속이라도 한 듯 흐린 눈발 속 행인들은 죄다 어두운 무색옷을 걸쳤다. 옷의 두께가 시린 생을 다 녹이지는 못하는지 몸은 계속해서 움츠러들고 있다. 숨을 곳도, 가려줄 곳도 없는 탁 트인 한강 위로 귓불을 휘감는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지금의 한강대교인 한강인도교 위에서 촬영했을 것이다. 사실은 기막힌 구도 덕분이겠지만, 사진 속 풍경이 하도 추워서 저 멀리 한강철교가 정말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저 멀리 점점이 사라지는 행렬은 초현실적인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저 뿌연 풍경을 통과해야만 하는 무겁고 축축하고 어두운 겨울 날씨는 엄연한 현실이다.

눈 위로는 그 현실에 순응한 혹은 거역한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사람도 점처럼 보일 만큼 널따란 강 위에서 발자국은 흙먼지 위로 개미들이 지나간 흔적마냥 덧없다. 1950년대 말 가난으로 얼룩진 서울에서 소시민은 그처럼 가벼운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그 깃털 같은 무게로 무거운 겨울을 나는 법을 알고 있다는 듯, 눈밭 위 무수한 발자국은 반질반질한 길을 내놓으며 가로질러 가는 길을 만들어 놓고 있다. 그러고는 이내 삶은 계속된다고 아우성치듯이 사진 맨 아래쪽을 향해 사람들은 발자국을 남기며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제 막 사라지려 하는 세 사내 중 가운데 사내의 신발은 점보다도 작지만 흰색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니 분명 흰색 고무신이다. 그 시린 발은 우리에게 겨울을 견디라고 속삭인다. 한 해 끄트머리 고 한영수 선생의 눈을 밟은 사진이 유독 눈에 밟힌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지난 칼럼===== > 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에  (0) 2015.01.08
포토제닉 드로잉  (0) 2015.01.01
암에 관한 백과사전식 해부  (0) 2014.12.18
50년 동안의 약속  (0) 2014.12.11
낙화의 눈물 조선로켓 강짜  (0) 2014.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