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다 이 꽃. 아니 더 정확하게는 꽃 사진이. 꽃을 너무 꽃같이 찍은 사진을 두고 예쁘다는 말을 하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불멸의 생명력을 가졌다 한들 향기도 입체감도 없이 인화지 위에 핀 꽃이 어찌 실물보다 매력적일 수 있을까. 그러므로 사진이든 그림이든 그 속에 핀 꽃은 진짜 꽃과는 다른 매력을 가져야만 한다. 사진가 구성수의 야생화는 얼핏 보면 수수하지만 꽤 복잡한 과정을 거쳐 자신만의 자태의 뽐낸다. 우선 찰흙판에 꽃을 얹고 고무판으로 눌러 음각을 만든다. 이 위에 다시 석고시멘트를 부어 굳히면 화석처럼 꽃의 가느다란 형태까지가 모두 살아있는 양각 부조가 된다. 이 위에 본래 야생화가 지닌 색감으로 색을 칠한 뒤 사진으로 촬영한다.
구성수, 금매화, 2011
찰흙판에 눌린 꽃은 꽃밥이며 꽃잎, 이파리들이 독특한 모양으로 포개져 땅 위에 서 있을 때와는 다른 형태미를 드러낸다. 야생에서는 늘 감추어 두었던 뿌리까지 온전히 모습을 갖추자 마치 식물도감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빛이 바랜 듯한 색감은 마치 말린 식물 표본 같기도 하다. 식물학자의 스크랩북에서 툭 튀어나온 것처럼 꾸미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눈여겨 관찰해야 할 것 같은 존재감의 꽃들. 작품 제목 ‘포토제닉 드로잉’은 영국의 팍스 탈보트가 1830년대 최초로 종이 위에 빛을 이용해 사물의 모습을 고정시킨 자신의 기술에 붙인 이름이다. 사진이지만 그림처럼 보이기도 하고, 작품이지만 도감이나 표본 같기도 한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카멜레온 같은 속성이 ‘빛으로 그린 그림’ 속에 다채롭게 숨어 있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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