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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기호 1번

Mark Duffy, Vote No. 1 연작 중


선거란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정책 싸움이 맞긴 한 것일까.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미국 대선의 전개 과정은 선거의 당락이 사회 교과서의 가르침처럼 순진하게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대권가도를 향한 파렴치한 권력의 움직임을 다룬 영화 <내부자들>만 봐도 선거는 훨씬 복잡하고 정교한 두뇌 싸움이자 심리전이다. 그 전쟁의 가장 표면에서는 2 대 8의 가르마와 파란색 넥타이로 상징되는 이미지 메이킹과 홍보 전략이 작동한다. 최대한 유능하고 신뢰할 만한 모습으로 비치기 위해 후보들은 머리 모양과 옷 색깔은 물론이고 미소 짓는 입의 크기까지 신중을 기해 프로필 사진을 찍는다. 이제 만족할 만한 사진을 얻었다면, 유권자들의 눈에 가장 효과적으로 많이 띄는 것이 관건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고도의 계산된 움직임 속에서도 의외의 변수는 발생한다.

 

사진가 마크 더피는 아일랜드 선거 기간 중 각 후보가 붙인 포스터를 촬영했다. 예상대로라면 이 포스터들은 각 후보의 분신으로서 아주 멋진 모습으로 유권자들을 유혹해야만 한다. 그러나 포스터를 기둥이나 벽에 고정시키기 위한 플라스틱 끈이나 나사못은 후보의 이마를 가로지르거나 목을 관통하며 흉측한 몰골로 둔갑시킨다.

 

차량 위나 건물에 붙은 포스터는 굴절되어 방송 사고처럼 녹아내리는 이미지로 변해버린다. 때마침 비바람이 내리쳐 포스터가 찢겨져 나가거나, 나비도 아닌 파리가 얼굴에 내려앉아 화룡점정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 순간 활동가로, 지식인으로 혹은 정치적 지도자로서 유권자들에게 호소하려던 후보들의 최선을 다한 표정은 마치 가짜였다는 듯 우스꽝스럽게 변해버린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변해버린 선거 포스터의 운명은 유권자와 제대로 소통해본 적이 없는 정치인들의 미끄러지는 대화법이 불러올 파국의 끝을 알리는 예고편 같기도 하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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