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디포짓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지독한 가뭄 속 우주비행사가 우주로 날아가 지구를 구해내지 못한다면, 혹은 <설국열차>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주인공이 눈으로 덮인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면. 지구의 미래를 극단까지 몰고 간 영화의 상상력이 만약 현실이 된다면 인류는 과연 무엇으로 생명의 끈을 다시 이어갈 수 있을까.

 

Yann Mingard, ‘Deposit’ 연작 중 Mount10 기업의 정문, 2010

 

척박한 기후 속에서 싹을 틔울지는 모르겠으나 식량으로 삼을 만한 볍씨나 바나나 씨앗 같은 종자를 구해야만 할 것이다. 먹이사슬과 종의 다양성을 위해 쥐나 바퀴벌레, 소나 말 같은 동물들의 유전자도 발견해낼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당연히 인간의 DNA도 필요할 것이며, 이 모든 생명체들의 복원에 지침서가 될 정보로서의 데이터 또한 필수일지도 모른다.

 

과연 이 현대판 노아의 방주는 지금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스위스 사진가 얀 밍가드는 이런 데이터들을 보관하는 22곳의 은밀한 장소들을 찾아다녔다. 예를 들면 데이터 백업을 전문으로 하는 마운트텐이라는 기업은 스위스 알프스 산맥 지하 벙커에 데이터센터를 두고 있다. 핵폭발과 기후변화로부터도 안전한 이곳에는 전 세계 다양한 고객들이 자신들의 고급 정보를 보관한다.

 

애초에 이곳은 1946년 스위스 군인이 만든 비밀 요새였다. 한편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 있는 유럽생물정보학연구소에는 혈액 채취통 같은 작은 튜브에 마틴 루서 킹의 연설이나, 셰익스피어의 작품 같은 데이터를 보관한다. 인류가 생물학적·문화적 유산을 분류, 보존하는 방식에 대한 밍가드의 4년에 걸친 방대한 작업은 영화보다 더욱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지난 칼럼===== > 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TV가 나를 본다  (0) 2016.09.09
도쿄 앵무새  (0) 2016.09.02
50+1  (0) 2016.07.29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0) 2016.07.22
183_3540_36152320  (0) 2016.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