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그래서 잠 앞에서는 모두가 겸손하고 평등하다. 그것은 죽음 다음으로 생명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완전한 멈춤의 순간이다. 다시 살아 움직이기 위해서 필수적인 몸과 마음의 정지 상태. 생을 이어간다는 의미의 생계는 달리 말하면 밥과 잠을 챙기는 상태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생계가 망가진 이들에게 잠잘 권리가 평등하게 주어질 리가 없다. 쪽잠이나 한뎃잠은 가능할지 몰라도 편한 잠은 사치에 가깝다. 640만명에 달하는 비정규직은 늘 이 생계의 위험에 시달린다. 그들이 요구하는 고용의 안정은 복지가 아니라 최소한의 삶의 조건으로서 밥과 잠인 셈이다.
2009년 용산 참사 때 시작한 후로, 사진가들이 십시일반으로 만들어 온 ‘빛에 빚지다-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 달력의 2017년도 주제는 ‘잠’이다. 이번 선 판매 수익금은 비정규 노동자들의 쉼터 ‘꿀잠’의 건립을 위해 쓰인다. 일터를 되찾고자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에게 따듯한 밥과 잠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꿀잠’은 비수도권에서의 접근성까지를 고려해 기차역 주변에 마련할 계획이다.
달력 속 사진은 시위 현장의 길바닥 한뎃잠부터 제주 강정천에서의 평화로운 낮잠까지 잠을 향한 싸움과 연민, 예찬으로 가득하다. 순하고 애꿎은 사람만이 거리에 내몰려 불면의 밤을 견뎌야만 하는 시대, 잠은 최소한의 권리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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