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Moving Days’ 연작 중 좌원상가아파트, 2015
바슐라르가 말했다. 집은 인간 존재 최초의 세계라고.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집이 온전치 않으면 인간의 존재가 흔들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승훈도 그랬다. 어쩌다 보니 서울에 살면서 유년 시절을 포함, 18번의 이사를 겪었다. 자발적인 이주가 아니라 떠밀리는 표류에 가까웠기에 그는 ‘겪었다’는 표현에 방점을 찍는다.
우연히 살던 동네에 들렀다가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그곳에서 향수를 넘어 일종의 당혹감을 느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하는 서울에서 재개발의 바람조차 비껴간다는 것은 무능력과 소외의 다른 표현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설령 동네는 그대로여도, 그곳 낡아가는 건물에는 사람들이 들고나기를 반복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곳을 나와서는 새집으로 옮겨가는 데 성공했을까. 이승훈이 18곳의 좌표를 찍어 보니 결국 엇비슷한 동네를 쳇바퀴 돌고 있었듯이 말이다.
이승훈은 살던 집을 다시 찾아가는 가상의 이사를 감행한다. 실제 살고 있는 집에서 빨래와 빨래건조대를 옮겨와 살던 집 현관문 앞에 널어놓기도 하고, 화분을 수레에 싣고 옮겨서 옛집 옥상에 가져다 놓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물건이나 화분은 실제 이사 때처럼 망가지거나 상처를 입기도 한다. 추억이 얽힌 옛집으로의 기념 방문이자 떠밀리는 나날들을 기념하는 소심한 시위다.
사진만으로는 그곳이 누구의 집인지 몹시 헷갈린다. 이사란 누군가의 흔적이 있던 곳에 내 흔적을 덧대러 가는 것일 수도 있지만, 미래의 누군가가 정주할 곳에 내가 임시로 살러 가는 것일 수도 있다. 삶의 조건이 불안할수록 이 기간은 짧아진다. 그러므로 어느 날 살던 이가 불쑥 찾아와 과거 하고 싶었던 낙서를 이제야 남기고 돌아간다 한들 놀랄 일도 아니다. 이승훈이 옛집 벽에다 감쪽같이 그런 것처럼.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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