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다녀서 발길이 빠삭한 숲에서도 예기치 않은 일들은 일어난다. 인적이 없어 나만의 숲 같지만, 누군가에게도 그곳은 비밀의 화원일 터. 다음날 와보면 그사이에 다녀간 이들이 내려놓고 간 흔적들을 자양분 삼아 숲은 한 움큼 더 웃자라 있다.
김지연, ‘놓다, 보다’ 연작 중 빨강 넥타이, 2014
어느 날엔가 그 숲 나뭇가지에 빨강 넥타이가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진녹색을 배경으로 매달린 빨강 천, 제멋대로 자라는 식물과 격식의 상징인 타이, 양복 차림으로 추정되는 사내의 등장과 실종. 전혀 예기치 못했던 사물 하나가 더해지자 숲은 수많은 이야기의 단서를 제공하는 무대로 돌변했다. 그때부터였다. 김지연이 무언가를 숲에다 놓은 것은. 그러고는 찬찬히 그것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이 행위가 어떤 질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어머니에 관한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는 하얀 모시 적삼이 나뭇가지에 걸리는가 하면, 세월호를 안쓰러워하는 노란 리본이 주렁주렁 매달리기도 한다. 숲속 웅덩이에 금붕어를 키우려던 남자를 우연히 목격한 뒤로는 그를 대신해 잠시 어항을 가져다 놓기도 한다. 정미소나 이발소, 시골마을의 가게 등을 통해 한 시절의 존재 방식을 기록해온 김지연의 과거 행보를 아는 이들에게 그의 신작은 낯설고 신선하다. 그동안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생략한 채 담담하게 풍경의 목격자를 자처해왔던 이가 비로소 자신만의 자유분방한 얘기를 꺼내놓기 시작한 것일까.
숲의 시간적 배경은 신록이 무성한 계절, 생물학적으로는 중년을 훌쩍 넘겼지만 그는 이제 막 자라나는 숲에 발길을 들여놓는 참이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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