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와 동대문 일대에 걸쳐 있는 낙산은 전망이 좋기로 유명하다. 전망이 좋다는 건 수고롭게 올라야 할 만큼 높다는 뜻이다. 요즘에는 공원으로도 조성해 등반이 필요 없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지만, 어쨌거나 본래 이름은 낙타 모양을 한 ‘산’이다. 그러니 도성이 세워지기 훨씬 전부터 우뚝 솟아 있던 서울의 지리적 터줏대감이기도 하다. 변상환은 어느 날 이 낙산 아래 창신동으로 이사를 왔다. 그는 창신동 주민이 되기 전부터도 돌과 친한 작가였다. 그는 우리의 시각 정보에 대한 유쾌한 반전을 꾀하는데 예를 들면 붕어빵이나 고무장갑, 소주잔 같은 익숙한 사물을 시멘트로 굳혀 화석처럼 만드는 식이다. 그에게 연약하고 부식될 것 같은 일상의 물건을 시멘트로 굳힌다는 것은 단단하고 강한 생명력을 부여하는 과정이었다.
변상환, 낙산돌, 창신6길 42-3
그런 그가 돌산을 발아래 둔 채 도처에 돌덩어리가 놓인 골목을 거닐게 된 셈이다. 물론 빼곡하게 지붕을 맞댄 달동네에서 돌의 운명이란 뻔하다. 담장 아래 삐죽 솟아난 어떤 바위는 족보를 알 수 없는 정령 신앙 같기도 하고, 하수구 뚜껑을 눌러주거나 주차금지 표지판의 굄돌쯤으로 쓰이는 녀석은 그냥 짱돌일 뿐이다. 그것들은 심지어 보행을 방해하지 않도록 구석진 응달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변상환에게 이 돌은 터를 잡기 위해 파낸 음각 지대에서 미처 파내지 못한 돌기, 말하자면 과거부터 이어져 온 시간의 목격자 같은 것이었다. 아니면 낙산의 지리적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도 주목받지 못한 천덕꾸러기 특산물이기도 하다. 그는 거울로 자연광을 반사시켜 이 돌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로 했다. 그것은 화투의 오광처럼 둥그런 보름달 같기도 하고 귀한 몸 뒤에서 빛나는 후광 같기도 하다. 이렇게 하여 낙산 아래 후미진 골목마다에는 또 다른 바위산 하나가 탄생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를 잡석들에 빛을 비추자 비로소 산이 되었다고나 할까.
뒤집어 생각하면 영험한 돌이 섬세한 관찰력을 가진 동네 총각을 작가로 단련시키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사물은 교감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그 세계를 보여준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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