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담배꽁초, 질서 정연한 배치로 보아 분명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금연 캠페인이라 하기에는 덜 무섭고, 광고라 하기에는 딱히 먹음직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관리 상태가 너무 깨끗해 범죄 현장의 증거물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사진의 정체가 뭘까. 바로 사진가 페리트 쿠야스가 하루 동안 피운 담배의 총량이다.
각 꽁초 밑에는 자그맣게 담배를 피운 시간까지 적어 놓았다. 집과 작업실을 오가며 두 종류의 담배를 피운 이 남자는 아침 7시5분22초를 시작으로 그 다음날 3시35분27초까지 무려 36개비를 피워댔다. 반복적으로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는 꽁초의 길이는 몇 모금만 빨고 장초로 남겨 놓은 뒤, 다시 불을 붙여 마지막까지 피우는 그의 독특한 버릇마저 눈치채게 만든다.
Ferit Kuyas, Cigarette Diary #01, 17·6·2012
굳이 알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일단 사진을 들여다보니 어쩔 수 없이 그에 대해 알게 돼 버린 기분이랄까. 알 필요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알고 나니 재미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이 연작의 제목은 ‘당신이 나에 대해 알고 싶어하지 않던 50가지’.
자신의 손을 거쳐간 휴대폰, 아마추어 골퍼로서 받은 트로피, 하루 동안 마신 커피 캡슐부터 이혼한 부인의 증명사진까지 이 50가지는 그야말로 시시콜콜하게 한 남자의 사생활을 드러낸다. 도심의 풍경 사진으로도 유명한 페리트는 그 못지않게 사물이나 소소한 일상의 기록을 통해 사진으로 일기를 쓰는 작업에도 몰두한다. 하루를 성찰하거나 개인의 역사를 세상에 남기려는 뜻은 전혀 없다. 옛일을 기억할 수 있다면 다행이고, 무엇보다도 재미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는 신변잡기식 유머를 통해 작가들을 둘러싼 엄숙과 겉멋에 대한 환상을 깬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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