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색 벽을 넝쿨 뿌리가 온통 휘감았다. 계절이 기우는 것인지 생명이 저무는 것인지 넝쿨 색은 시들어 배경의 상큼함을 더욱 무색하게 한다. 깨져버린 창문은 쓸쓸함에 더해 스산한 기운마저 풍긴다. 그 앞 거칠게 가지를 뻗은 나무는 바람의 방향을 짐작하게 한다. 길들여지지 않은 초록 가지들이 뿜어내는 생명력에 눈을 고정시키려는 순간 죽은 염소의 머리뼈가 우리를 바라본다. 도대체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인지 살아 있음을 축복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함. 사진 속에는 죽음과 생명이, 자연과 파괴가 함께 뒤엉킨다. 더없이 자극적인 색과 장면에 홀려 절대 들어오면 안 되는 금단의 땅에 들어선 듯한 불안감 속에서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미궁에 빠질 뿐이다.
박형근이 2004년 이후 지속적으로 내놓은 ‘텐슬리스’ 연작은 그로테스크하다. 시제 없음을 뜻하는 익숙지 않은 제목은 실제로 장소도 시점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아니 그런 단서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는 현실 속 어느 장소를 배경으로 촬영하지만 그가 담아내고 싶은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사진은 가보지 못한 곳 그러나 우리가 왔거나 끝내 다다르게 될 존재의 시원을 좇는다. 원초적이고 비밀스러운 그 장면을 위해 그는 때로는 과감하게 때로는 모호하게 풍경에 개입한다. 물웅덩이에는 선연한 빨강 물감이 번지고, 깊은 숲에는 썩어가는 열매가 퍼져있는 식이다. 그것들은 위험할 정도로 아름답다. 박형근의 예민한 감각이 만들어낸 초현실의 세계, 마치 깊은 숲을 헤치고 들어가듯 그 비밀의 정원에 다다르면 거기에는 한없이 외롭고 슬프면서도 뜨거운 각자의 내면이 기다리고 있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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