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 북극곰의 평균 몸무게는 500킬로그램. 그 육중한 몸으로 빙하 위를 헤엄치듯 가볍게 달려 물범을 포획하는 지구상 최강의 포식자다. 영하 40도 극한의 온도에서 번식이 가능한 유일한 육식 동물을 야생에서 눈앞에 마주한다는 것은 그래서 불가능에 가깝다. 동물원에서 북극곰이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건 아마도 이 역설 때문일 것이다. 가장 두려운 대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호기심. 동물원의 격리 시설이 북극곰의 공격성을 차단하는 순간, 관람객들에게 이 포식자는 한없이 순하고 느긋한 지구상 최고의 귀염둥이로 둔갑한다.
Lo Sheng-Wen, ‘White Bear Project’ 연작 중 중국 우한 하이창 극지해양박물관, 2015
사진가 로성원은 유럽과 중국의 동물원과 수족관 25곳을 찾아 북극곰이 인공적으로 서식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동물원이라는 공간의 모순에 집중했다. 동물원은 갇힌 북극곰에게는 ‘집’이지만 관람객들에게는 구경거리가 있는 ‘무대’다. 물론 종의 보존을 위한 연구가 필요한 ‘생태’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이 세 가지 목적은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일까. 동물의 스트레스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그럴싸한 서식 환경을 갖췄다 해도 시멘트 바위 위로 가짜 구름이 떠다니는 흉내 낸 자연, 가짜 집일 뿐이다. 그 꾸며진 사육의 공간에서 곰이 보이는 퇴행적인 행동들을 사람들은 자신과의 교감인 것처럼 착각하곤 한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생태친화적 동물원의 기반을 다진 이는 독일의 하겐베크. 아프리카 원주민을 동물원에 가둔 채 공연을 기획하던 그가 떠올린 대안적 사업 구상이었다. 그러니 생태친화적 동물원이라는 말은 여전히 인간친화적인 동물들의 무대라는 뜻이기도 하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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