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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눈의 백일몽

의자에서 뛰어내리는 슈퍼맨은 과연 안전하게 착지를 할까. 아직 자라지 않은 여린 몸, 깊지 않은 낙하의 폭은 설령 추락한다 할지라도 대형 사고가 아님을 쉽사리 감지시킨다. 그런데도 묘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힘이 있다. 사내아이의 흔한 장난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일 텐데도 시시한 게 아니라 묘한 불안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과감하게 생략된 얼굴, 파랑과 빨강의 극명한 대조, 순간 낙하의 재빠른 속도감은 정사각 구도를 꽉 찬 긴장감으로 가득 채운다. 심지어 지금 슈퍼맨은 뛰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위로 치솟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다. 어쩌면 슈퍼맨은 창 밖 나무와 창문에 비친 실내 풍경에서 눈을 빼앗기 위한 장치였을지도 모른다.


손이숙, Against the Eyes 04, 2010


손이숙은 이런 착각과 착시 효과를 노린다. 그녀는 익숙한 풍경을 다시 한번 들여다봐야 하는 묘한 순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일종의 시각 게임을 즐긴다. 사실 본다는 것은 몹시 정교한 한편 또 얼마나 허술하고 주관적인가. 같은 장면 앞에서도 우리는 제멋대로 느끼며 연상하곤 한다. 동물원 창에 붙여놓은 새 모양의 스티커들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반면, 동물원에 갇힌 펠리컨은 마치 박제처럼 잠들어 있다. 이렇듯 죽은 것이 산 것처럼 보이고, 산 것이 죽은 것처럼 보이는 환영 사이를 우리의 시각은 넘나든다. 사진이 서사에 관한 기록이 아니라 사건과 환영 사이의 틈을 파고드는 지각의 영역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손이숙에게 일상은 앨리스의 나라처럼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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