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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기념비의 역사

문화혁명이 시작하던 해에 태어난 왕칭송은 중국의 현실 사회와 기존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지점을 특유의 방식으로 풍자하는 작가다. 본래 예술학교에서 그림을 전공한 그는 중국식 팝아트풍으로 풍자화를 그리다 1990년대 중반 사진 매체로 옮겨왔다. 그는 마치 영화감독처럼 거대한 규모의 세트장을 만들고 모델을 섭외해 원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맥도널드와 콜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에 대한 동경, 어떻게든 올라가야 하는 신분 상승의 열망, 시골을 떠나 대도시에 정착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의 거친 인생 등 그가 대형 사진 한 장 속에 담아내는 장면은 중국의 오늘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Wang Qingsong, History of Monuments, Detail 01, 2010


‘기념비의 역사’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역사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박물관이나 교과서에서 연대기 형식으로 나열된 거대한 역사는 늘 권력을 지닌 이들이 만들어낸 그들만의 역사였을 뿐이다. 그런 역사 속에는 작가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작품 속에 나온 인민들이 등장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왕칭송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인된 역사가 찬양하고 기려왔던 기념물의 도상을 모은 뒤, 모델들에게 그 기념물의 포즈를 재현시킨다. 그것은 평범한 이들을 역사적 인물과 동일화시키는 퍼포먼스이기도 하고, 신화적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폭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작품의 길이는 무려 42m. 이 한 점을 얻기 위해 무려 200명의 모델을 동원해 꼬박 15일 촬영을 이어갔다. 물론 작가는 자신의 주관적인 역사가 공인받으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는 다만 이 과정을 통해 역사마저도 각색하려는 주류 사회의 위선을 꼬집고, 역사의 고정불변성을 해체할 뿐이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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