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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니케, 예술이란 이런 거야!

유경희 | 미술평론가


승리의 여신 니케, 기원전 190년께, 대리석(출처: 경향DB)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나의 멘토의 게스트룸에는 ‘사모트라케 여신의 승리’가 걸려 있다. 물론 복제된 포스터다. 나는 일년에 일주일 정도는 그 방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볼 수 있는 위치에 놓인 이 작품은 고즈넉한 명상의 시간을 제공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승리를 가져다주는 니케(나이키) 여신상은 기원전 190년께 제작된 헬레니즘 시대의 대표적 조각이다. 로도스섬 사람들이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3세와의 해전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 조상은 승리의 감격을 알리기 위해 니케가 하늘에서 뱃머리에 내려앉는 순간, 갑자기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그녀의 치맛자락을 휘날리게 해 다리에 감기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프랑스 고고학 발굴팀이 1863년 에게해 북동부에 있는 사모트라케 섬에서 발견한 이 작품은 당시 100토막이 넘게 조각난 돌무더기에 불과했다. 이 조각들은 나무 궤짝에 담겨 루브르 복원실에 옮겨졌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눈부시게 부활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니케의 머리 부분과 양 팔뚝은 소실됐다. 한때 니케의 오른손에 승리를 알리는 트럼펫이나 월계관이 있었으리라는 추측이 있었으나 최근 니케의 손가락 부분이 발굴되면서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음이 확인됐다. 어쨌거나 머리와 팔뚝의 부재는 이 조각상을 더욱 더 드라마틱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부재의 대상을 상상하는 것이 훨씬 더 예술적이라는 말이다. 진리란 숨겨 있는 것이 드러나는 ‘탈은폐(aletheia)’의 미학이니까.


저 살며시 드러나는 배와 물결치는 옷주름 사이의 간격, 그리고 대리석에서 느껴지는 바람과 물기는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예술가라는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제작된 이 조각이, 오히려 오늘날의 예술가상에 대해 숙고하게 하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니케는 예술(가)에 대한 최상의 메타포다. 빨리 이 포스터 한 장을 구입해서 침실에 걸어 두어야겠다. 그것을 보는 일 자체가 아침기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