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책과 해골, 헛되니 어쩌라구!


피테르 클레즈, 바니타스 정물화, 1630년(출처 :경향DB)



책 그림은 누구나 다 좋아한다. 그래서 화가들도 즐겨 그린다. 미술에선 이런 걸 소재주의라고 부른다. 호감 살 만한 소재로 가볍게(?)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 말이다. 그런데 책 위에 해골이 놓여 있다면 사람들이 좋아할까? 우리라면 거부했을 법한 이런 그림을 네덜란드인은 은근히 즐겼던 것 같다.


이런 그로테스크한 취향을 담은 네덜란드 정물화를 일컬어 바니타스(vanitas·허무, 허영, 영어는 vanity)화라고 한다. 사실 모든 정물화는 바니타스를 의미한다. 특별히 바니타스 정물화라고 명명할 때는 해골, 책, 골동품 등을 통해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보다 직설적인 메시지를 드러내는 경우이다. 바니타스 정물화는 ‘30년전쟁’ 이후 1650~1660년 사이에 대대적으로 그려진다. 30년전쟁(1618~1648)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로마 가톨릭과 연합해 반종교개혁을 주창하며 스페인 지배하에 있던 네덜란드를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려 했던 사건이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스페인을 이기고, 오란녀 왕가를 중심으로 한 신교 공화국으로 독립하게 된다.


에두아르트 콜리어의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1650년경). (출처: 경향DB)


바니타스 정물화는 해골(죽음과 부패의 상징), 시계(얼마 남지 않은 시간, 절제의 상징), 꺼진 등잔과 촛불(시간의 필연적 경과, 죽음의 임박), 책(지식의 무용함) 등이 단골고객으로 묘사된다. 때로 담배와 부싯돌이나 담배쌈지 같은 모티브들이 더해진다. 이들 중 가장 눈에 띄는 보편적인 모티브는 단연코 책과 해골이다.


중세 때 세계는 읽을 수 있는 책처럼 생각됐다. 또한 세계는 신의 의지가 실현되는 무대와도 같았다. 뿐만 아니라 책은 인류의 경험과 지식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인간존재의 유한성을 극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해골 아래 놓인 낡은 책은 죽음 앞에서는 지식과 지혜도 결코 영원한 진리가 될 수 없음을 나타낸다. 사실은 사람들을 겁주고 위협하려고 ‘메멘토 모리’를 설파한 것이 아니다. 바로 ‘카르페 디엠’, 즉 현재를 살라고, 이 순간을 즐기라고 일갈하는 거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