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고문 사건이 일어난 조사실 책상, 1986년, 경향신문사
책상 하나로도 꽉 찰 만큼 좁은 사무실, 창문에는 철창이 답답하게 둘러싸고 있다. 조금 삭막해 보이긴 해도 흔한 사무실의 모습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죽기보다 싫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지옥 같은 곳이기도 하다.
1986년 6월6일 새벽, 당시 대학생이었던 권인숙은 부천경찰서 조사실에서 성적으로 유린당했다. 부천시 지역의 노동운동에 가담해 ‘허명숙’이란 가명으로 위장취업했던 그녀는 주민등록증을 위조한 혐의로 연행됐다. 그리고 사진 속 조사실에서 수갑에 묶인 채 문귀동 형사에게 매우 악질적인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 이른바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다. 자살까지 생각했던 그녀는 정신을 차려 이 사실을 폭로했다. 문귀동을 강제 추행 혐의로 고소하고 검찰에 진상규명도 요구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어렵사리 용기를 낸 여성의 목소리가 우리 주위를 맴돈다.
“나는 생애를 걸고 지구를 향해서 정당성을 주장한다.”
권인숙의 최후진술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목소리를 살뜰히 챙겨야 할 때다. 그러나 30년 전 검찰은 공식발표에서 “운동권이 성을 혁명의 도구화하고 있다”고 비난했고, 지금의 미투 운동을 두고는 꽃뱀을 운운하는 이도 있다. 절박한 구조신호가 담긴 이 목소리에도 응답하지 못하는 세상이란 얼마나 엉망인 것인가.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