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구, 사라지다-흰개, 2009
그는 애초에 이런 무거운 주제를 다룰 생각이 없었다. 2001년 불광동으로 작업실을 옮겼을 때만 해도 강홍구에게는 시골과 도시의 경계쯤에 놓인 이 지역이 그저 흥미로웠을 뿐이다. 예상 밖의 근사한 녹지, 그 주변부의 정감어린 촌스러움, 그럼에도 서울시라는 행정 구역이 갖는 도시적 욕망. 이 묘한 지역은 과연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이 작가인 그의 기록 본능을 부추겼다. 그렇기는 해도, 본래 창작 활동이란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비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는 딱히 이 기록에 특별한 무게를 두지는 않았다. 2004년 은평 뉴타운 계획이 본격적인 시동을 걸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갑자기 매일같이 보던 익숙한 풍경이 살풍경으로 변하면서, 그는 본의 아니게 재개발의 현실을 오랫동안 기록해온 뛰어난 예지력의 소유자가 되었다.
산책하면서 소소하게 찍던 사진이 갑자기 개발의 폭력성을 다룬 심각한 주제로 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그 자체가 블랙코미디다. 그런데 ‘사라지다-은평 뉴타운에 대한 어떤 기록’이라는 연작 제목이 보여주듯, 이 부조리함에 맞서는 작가의 태도는 사뭇 애매하다. 방관자이자 관찰자처럼 위장한 그에게 ‘어떤’ 풍경이란 차마 뭐라 단정지을 수조차 없는 폭력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 말을 뒤집어보면 누군가에게는 개발이 그럴싸하고 멋진 풍경일 거라는 모순까지를 포함한다. 회화와 디지털 사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의 작업 방식대로, 그는 이 작품에서도 석 장의 사진을 합성함으로써 공사 현장의 위용을 파노라마식으로 펼쳐낸다. 이 풍경을 배경으로 선 세 마리의 개는 과연 어디로 갔을까. 그가 덧붙여 놓은 이미지는 욕망의 덧없음, 혹은 그 욕망에 맞설 수 없는 무기력한 생명들의 덧없음을 극대화시킨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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