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 5·18민주묘지 1-1 앞에서 임근단, 2011.
5·18 민주항쟁의 첫 희생자는 김경철이었다. 어렸을 적 약을 잘못 먹어 귀가 먼 스물여덟의 농아. 국제양화점에서 신발 만들면서 백일을 갓 넘긴 딸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던 소박한 가장. 광주버스터미널에서 계엄군들이 그를 학생으로 오인해 둘러쌌을 때 그는 구령을 따라 부르지 못해, 진짜 벙어리가 말을 못한다는 죄로 목숨을 잃었다. 말을 하는 이조차도 말문이 막힐 기막히게 억울한 시절이었다. 이제 그는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1-1이라는 번호로 그날의 끔찍함을 증언한다. 그런 아들 곁에서 소복을 입고 선 어머니 임근단 여사.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머리 위편, 잔디 안에 심어진 진갈색 나무에 유독 눈길이 가곤 한다. 그것은 아직 봄이 먼 날들을 버티다 누렇게 변해버린 어머니의 가슴속 같기도 하고, 그 버석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마침내 아들의 누명을 버텨낸 어머니에게 드리운 월계관 같기도 하다. 자식이 돌아오지 않는 한, 설령 봄이 온다 해도 저 월계관은 결코 황금빛으로 빛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임근단 어머니를 비롯해 5·18의 어머니들이 팽목을 찾았다. 1980년의 상처를 안은 이들이 2014년에 상처를 안은 이들을 위로해야 하는 현실은 서글프다. 5·18 특별법을 위해 무려 15년을 기다려야 했듯, 그 특별법 이후에 모든 억울함이 다 해소된 것은 아니듯, 세월호의 유가족도 다시 지리멸렬한 기다림과 싸워야만 하는가. 봄이 올수록 슬픈 날들이 더 많아지는 것은 역사가 앞으로 가지 않기 때문인가. 5·18의 어머니들이 4·16 어머니들에게 전한 말.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 진짜 울음을 울어본 이들만이 주고받을 수 있는 가장 성스러운 위로. 그러나 이 위로가 필요한 봄날은 너무 잔인하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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