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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만 레이의 선물, 다다이즘적 농담


만 레이 ‘선물’ 1921



 만 레이는 화가, 사진가, 설치미술가, 영화감독 등 다방면에 걸친 멀티아티스트다. 거의 100년 전 작가인데도 어떤 예술가보다 훨씬 아방가르드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전방위적인 경력 때문이다. 만 레이의 예술세계는 많은 부분 뒤샹의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 작품 역시 뒤샹의 ‘병 걸이’와 ‘자전거 바퀴’ 등과 연장선에 있다. 


만 레이는 미국으로 이민온 러시아계 유대인이다. 독특한 점은 당대 유럽에서 미국으로 망명하는 작가들과는 반대로, 1921년 미국에서 파리로 가서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가했다는 사실이다. 2차 세계대전으로 미국으로 돌아오기까지 20년 동안 만 레이는 상류사회에 널리 알려진 유명 인사였다. 저녁에는 ‘베니티 페어’의 편집장이 의뢰한 일을 하고, 다음날 오후에는 제임스 조이스의 초상 사진을 찍는 식이었다. 만 레이의 스튜디오에는 예술가뿐 아니라 돈 많은 미국인과 유럽 귀족들이 몰려들었다. 


2차 세계대전을 피해 캘리포니아에 온 만 레이는 간절히 파리로 돌아가고자 했다. 모국이 자신의 예술세계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 유럽에서 함께한 동료들은 환영받은 반면, 만 레이는 아웃사이더로 남았기 때문이다. 한 매체에서 다른 매체로 너무 쉽게 옮겨가는 것은 물론, 패션 사진과 초상 사진 등 상업적 영역에서 명성을 얻은 만 레이를 비평가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이 작품 역시 만 레이의 기발한 다다적 발상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다리미에 구리 못 13개를 붙였다. 매끈함과 뾰족함의 낯선 만남! 옷을 평평하게 펴는 역할을 하는 매끈한 다리미와 옷에 구멍을 내서 훼손시키는 못의 만남이라니, 얼마나 모순적이며 아이러니한가! 이 작품은 곧 파괴되었고, 사진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나중에 만 레이는 복제품을 몇 점 만들었고, 한정판으로 다량 제작하기도 했다. 당신이 이 선물을 받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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