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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메아리와 수선화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에코와 나르시스, 1903년 (출처 : 경향DB)

강의 신 케피소스가 강의 요정 리리오페를 감싸안았다. 리리오페는 달이 차올라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어찌나 예쁘던지 보는 사람들마다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그런 까닭에 이름을 ‘망연자실’, 즉 ‘나르키소스’라고 불렀다. 테이레시아스는 나르키소스가 평생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는다면 오래 살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나르키소스의 미모 속에 도사린 파괴적 결말을, 그의 불운한 운명을 직감했던 것이다.

어느 날, 헤라의 징벌로 반벙어리가 된 요정 에코가 나르키소스를 보고 반했다. 얼씬거리며 말을 걸고 싶었지만, 나르키소스의 말만 따라할 뿐이었다. 그는 그녀가 자기를 조롱한다고 생각, 자기 손을 잡는 그녀를 뿌리치며 매몰차게 떠났다. 에코는 고독 속에 나날이 야위어갔고, 결국 목소리만 남아 메아리가 되었다.

나르키소스를 사랑했으나 실연당한 수많은 요정들은 하늘을 향해 기도했다. 나르키소스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해, 사랑의 아픔을 알게 해달라고 말이다.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는 이 소원을 들어주었다.

나르키소스가 목을 축이기 위해 호수 위로 몸을 숙이다가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던 것. 순간 그는 물속에서 빛나는 눈과 아름다운 입술, 그리고 형용할 수 없이 수려한 미모의 청년을 발견했다. 나르키소스는 호수 속의 남자에게 단박에 매료되었다. 결코 가질 수 없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 것. 자기인 줄 몰랐다면, 나르키소스의 사랑은 동성애가 아닌가?!

영국 라파엘전파의 대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는 에코를 화면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돌린 시선을 통해 짝사랑하는 그녀의 애달픈 심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나르키소스 옆에는 앙상한 가지만 남은 마른 나무, 발치에는 그가 죽은 자리에 태어나게 될 수선화가 배치되어 있다. 나르키소스의 죽음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정말 물속의 꽃미남이 자기인 줄 몰랐을까? 아니다. 분명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떤 사랑보다 지독한 사랑, 자기애!


유경희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