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줍고 돌아오는 여인들, 캔버스에 유채,1859년. 파리 오르세미술관
밀레가 활동했던 시절, 그의 ‘이삭줍기’보다 훨씬 더 인기 있었던 그림이 있다. 우리에겐 생소한 이름인 쥘 브르통(Julles Breton)의 그림인데, 당시 살롱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 황량한 들판의 저녁 무렵, 남루한 복장의 한 무리 여성들이 짚단을 이거나 든 채 걷고 있고, 몇몇은 아쉬운 듯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이삭을 줍고 있다. 여인들은 추수가 다 끝난 대지주의 밭에서 바닥에 흩어진 지푸라기를 주우러 온 가난한 농민들이다. 사실 이 풍경 속에는 짠한 스토리가 숨겨 있다. 당대 프랑스 소작민들은 추수 후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갈 수 있도록 허락됐지만, 동시에 이삭줍기는 가장 천한 일로 여겨졌던 것. 이 작품을 두고 당대 보수적 비평가들은 사실주의의 정수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혹 그들이 칭송한 것은, 비참한 상황에도 무척 당당하게 생존하는 모습이었을까?
브르통의 그림은 밀레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처참한 빈곤과 고단한 노동의 흔적이 덜 보인다. 따스하고 엄격한 시선이 녹아 있으며 시적인 품격마저 보이는 밀레의 작품에 비하면, 그의 작품 속 여인들은 무표정하지만, 기이하게도 포즈와 태도가 축제 분위기마저 풍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당대 농민의 실상이 아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당의정 같은 프로파간다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마치 사회주의 리얼리즘 회화같이 말이다.
브르통은 프랑스 북부 지역에 위치한 쿠리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에콜 데 보자르에서 공부했다. 파리에서 풍경화를 그렸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고향에 돌아와 헐벗은 사람들, 시골풍경 등 농민의 삶을 주제로 작업을 발전시켜 나갔다. 농민화가로 알려진 그는 ‘진실주의(verism)’의 옹호자이자 뚜렷한 사회의식을 가진 사실주의자였다. 반 고흐 역시 브르통의 작품에 매료되었다. 바야흐로 수확의 계절이다. 비가 너무 자주 내려 수확의 기쁨이 예전같지 않다는 소식이 전해온다. 무엇보다 농부들의 마음이 흡족해야 나라가 산다. 그들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인 계절이기를 바라본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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