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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미완성의 변증법적 극장

권순관, An Interview, 2009


‘미완성의 변증법적 극장’. 사진가 권순관이 경희대 미술관에서 전시를 열면서 붙인 제목이다. 꽤 복잡한 말이다. 변증법적이라는 것은 모순과 대립을 통해 새로운 지향점을 찾아간다는 뜻일 텐데 이게 미완성이니 몹시 회의적이다. 게다가 이 말이 극장을 수식한다. 변증법적으로 완성되지 못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극장이라는 게 존재할까. 작가에게 그것은 현실 세계의 또 다른 은유다. 그에게 현실은 극장처럼 환상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내는 모든 가치 체계, 불변의 진리를 지닌 사건 등은 그에게 변증법적으로 변해갈 순간적인 환상에 불과할 뿐이다. 하물며 사진 한 장이 역사적 사건을 압축한다는 말은 가당치 않다. 그러므로 그의 사진은 연출이 되었든, 인물 사진이 되었든, 현장 사진이 되었든 본다는 것의 본질에 대한 집요한 탐색이자 실험으로 귀결된다.

‘인터뷰’라 이름 붙인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기자회견장 사진도 예외는 아니다. 인권침해 사례를 보고하는 이 자리에 무대처럼 환하게 조명이 등장한다. 사진의 중심부를 차지하는 이 화려한 빛은 정작 인터뷰 주인공들의 비중을 떨어뜨린다. 동시에 그 무게 비중의 균열은 사진 속에 등장하는 모든 주변부 인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진다. 그들 중 누가 취재진이고, 누가 구경꾼이며, 누가 사건의 주체일까. 도대체 어디까지가 연출이고 어디까지가 실제 사건인지도 모호해진다. 권순관은 이런 식으로 사건에 개입해 또 다른 극화된 상황을 만들어내며 우리의 시각 체계를 교란한다. 아마도 그 이면에는 대량 해고라는 심각성을 너무도 심각하지 않게 만들어내는 현실이 더 극적임을 드러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취하는 태도는 결코 단정적이지 않다. 자신조차도 늘 회의로 가득 찬 세상의 덧없는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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