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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바리데기



우리는 모두 바다에서 왔다고 했다. 생명 탄생의 첫걸음이 바다에서 시작한 것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크기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바다는 무한함을 상징한다고 했다.


류준화, 기다림-11, 2015, 캔버스 위에 아크릴릭, 콘테, 석회, 112×193.9㎝


그리고 인간은 무한하다 싶은 것 속에 있다고 느낄 때 제약을 넘어설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고 했다. 그래서 바다를 항해하는 배야말로 인간의 대담함과 지혜로움의 증거라고 했다.

생명의 요람 바다에는 생명이 버려지기도 했다. 아비 목숨을 살릴 생명수를 구해 온 바리데기도 애초에는 부모가 바다에 버렸다. 오매불망 아들을 기다리던 부부 사이에서 일곱 번째로 태어난 딸이었기 때문인데, 부모는 그가 꼭 죽기를 바란 건 아니라고 했다.

누군가 좋은 사람이 구해서 키워주어도 좋겠다 싶었단다. 운좋게 노부부가 구해주어 잘 자란 바리데기는, 제 목숨 살리자고 그제서야 버린 딸을 찾아나선 아비를 위해 생명수를 구하러 지옥길을 떠났다.

지난한 고행의 시간과, 아이를 일곱명 낳아 기를 만큼의 기다림 끝에 저승의 약수를 손에 넣은 바리데기는 그 물로 관에 누워 뼈만 남은 아비를 살렸다. 그 후 바리데기는 사령을 통제하고 죽음을 관장하는 신이 되었다. 훗날 연구자들은 바리데기 신화에서 부계 질서의 모순을 뒤엎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자 하는 염원과 그 원동력을 발견하기도 했다.

류준화에게 바리데기 이야기는 여성, 더 나아가 이 땅의 소수자들이 처한 현실이면서 동시에 희망이기도 했다. 그의 작품 속에서 바리데기들은 배를 타고 강을 따라 흘러갔다. 강물이 바다로 모이는 것이 순리이듯, 강 위의 바리데기들이 이제 바다에서 만났다. 바다를 바라보는 바리데기들의 머리며 어깨 위에는 꽃이 피어 있다. 못다핀 생명을 대신하기라도 하는 양 화사하기만 하다. 손을 잡고, 시선을 주고받는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라는 것을 안다. 먹먹한 바다 앞에 서 있는 이들의 손에 저승의 약수가 들려 있다면 좋으련만. 그 요원한 꿈은 마음 깊이 접어둔 채, 잊지 않겠다고 되뇌며 기다림을 멈추지 못한다.



김지연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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