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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바리케이드로 오픈 마인드

요안 카포테, 오픈 마인드(바리케이드), 2014, 변형한 바리케이드와 철제 구조물, 관객참여형 가변설치 ⓒ YOAN CAPOTE/COURTESY THE ARTIST AND JACK SHAINMAN GALLERY, NEW YORK


쿠바 작가 요안 카포테는 지하의 미로 공원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뇌 구조처럼 설계한 ‘신경세포’의 미로 안에서, 사람들이 걷고 머물면서 명상하고 교감하기를 바랐다. 미로 한쪽에 쿠바 지도를 넣어, 미국의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쿠바에 대한 정책이 바뀌고, 그때마다 그 상황이 강제하는 선택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쿠바인들의 스트레스를 강조했다. 


미로가 제시하는 삶에 대한 다양한 함의와, 명상의 필요성을 접목한 이 작업으로 그는 대다수 현대인이 살고 있는 도시환경을 되돌아본다. 시스템이 집적되어 유기적인 것 같지만, 구성원이 합의하거나 냉소하지 않으면 통제될 수 없는 도시의 불온한 현실 앞에서, 도시 생활에 중독된 인간은 그들의 사고방식을 돌아봐야 했다.


작업 구상 후 10여년이 흐른 뒤에야 그는 이 프로젝트를 공공장소에 설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구상대로 구현하기에는 예산이 부족했다. 한계는 해결책을 낳는 법. 그는 미로의 개념을 뒤집어보기로 한다. 상상의 끝에,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리케이드야말로 일상의 공간을 마술처럼 미로로 만드는 데 특화된 도구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는 바리케이드를 구부리고 잘라 붙여, 이 사물이 군중을 통제하는 데 쓰이는 방식을 뒤틀면서 뇌 구조의 미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미로 구조물을 들어올려 사람들의 머리 높이에 설치했다. 미로는 ‘바리케이드’의 태생적 용도와 무관하게 관객의 동선을 전혀 방해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흔쾌히 안으로 그들을 초대했다. 관객은 미로 아래를 유유자적 걷거나, 그 아래 요가매트를 펼쳐 놓고 요가와 명상을 했다. 예술가의 선택을 거쳐 우리의 모든 행동을 통제하는 규칙, 법률, 도그마, 터부는 조금 가벼워졌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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