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현,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 2019. ⓒ 황수현
사실 인간에게는 공감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타인이 경험하는 육체적 통증을 나는 느낄 수 없으며, 타인의 행복, 슬픔의 감정 역시 그저 상상할 뿐 정확히 그의 느낌에 닿을 수는 없다. 만일 내 경험이 축적한 느낌의 데이터베이스로부터 타인의 감정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근사치의 ‘느낌’을 찾아냈다면, 그래서 내가 상대를 향해 표현한 공감의 제스처가 타인의 마음에 닿았다면, 그때 우리는 공감했다는 말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정말 공감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 누구도 정확히, 서로의 느낌에 닿지 못한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
황수현 연출로 세 명의 퍼포머가 둥글게 모여 앉은 관객 사이에서 1시간가량 펼친 퍼포먼스는 세번째 날의 분위기가 가장 무거웠다고 했다. 앞머리를 늘어뜨려 얼굴을 가린 세 퍼포머는, 관객과 마찬가지로 의자에 앉아 있다. 관객마저 ‘관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 안에서 퍼포머들은 똑딱거리는 시계추처럼 발을 까딱대며 바닥에 닿지 않았다. 그들의 몸이 극도의 긴장감을 품고 있다는 것은, 그 움직임이 만드는 근육의 감각을 상상하면 알아차릴 수 있다. 문득 옆자리 관객을 향해 얼굴을 들이대는 퍼포머의 동작은 그로테스크와 유머 사이를 오갔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그들의 리듬은 다채로워지고, 호흡은 휘파람에 실려 서로 신호를 주고받듯 허공을 가로질렀다. 의자를 타고 넘던 그들의 몸은 바닥으로 향하고 서로 얽혀들어 움직이며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날의 관객들은 견고했고, 좀처럼 퍼포머의 유머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날의 관객들은 퍼포머들이 느끼는 것을 생각했다.
<김지연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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