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회흐, 다다 식칼로 독일의 마지막 바이마르-똥배 문화 시대 절개, 1919, 콜라주, 114×90㎝,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소장
“그 문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말은 그가 이미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 자신이 특권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그들’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는다.
무정부주의를 지향하며 정치적 공격성을 드러내던 베를린 다다의 유일한 여성 작가 한나 회흐를 동료 남성 예술가들은 ‘다다의 잠자는 공주’라고 불렀다. 여성해방을 지지하며 남녀평등권, 기회 균등을 향해 정치적으로 옹호하던 그들이었지만, 소시민의 위선, 부조리한 세태를 고발하기 위해 매춘부, 여성의 나체를 폭력적으로 전시하는 방법을 거리낌 없이 선택하는 남성 동료 작가들 안에서 그는 편안할 수 없었다.
“나는 자기 확신에 찬 우리가 스스로 성취할 수 있는 모든 것 둘레에 쳐 놓는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기를 원한다. 우리가 판단하는 기준은 바뀌었다. 모든 개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는 1920년 ‘제1회 국제 다다 전시회’에 ‘다다 식칼로 독일의 마지막 바이마르-똥배 문화시대 절개’를 출품하여 다다이스트들을 향한 냉소를 보낸다. 작품 안에는 독일의 마지막 황제 빌헬름 2세를 비롯하여 무너진 과거를 대표하는 이들이 새로운 시대의 상징인 바이마르 공화국 초대 대통령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와 대면하고 있다. 다양한 화보에서 ‘절개’해낸 인물들 중에는 자신을 비롯하여 무정부주의적인 익살에 심취한 다다이스트들의 모습도 있다. 그 사이로 ‘다다에 가담하라’ ‘다다에 투자하라’ ‘다다가 정복한다’ 같은 유명한 말들이 광고문구처럼 자리를 채운다. 격변하는 시대를 목도하고, 변화를 이용하면서도 막상 자신의 이익을 흔드는 변화 앞에서는 행동을 유예하는 이들을 향해 작가는 가위를 들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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