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사 허버트&알렉산더 버츨러, 플로라, 2017, Synchronized double-sided Film Installation with shared Soundtrack, 30분 ⓒ테레사 허버트&알렉산더 버츨러
제임스 로드가 쓴 자코메티 평전에 실린 한 장의 흑백사진은 작가 듀오 테레사 허버트와 알렉산더 버츨러의 호기심을 제대로 건드렸다. 좌측에 앉은 젊은 자코메티는 카메라를 향해 있고, 우측의 여인은 그를 향해 앉았다. 둘 사이에는 이 여인, 플로라 마이요가 만든 자코메티의 두상이 있다. 사진이 포착한 특별한 분위기, 그리고 플로라에 대한 로드의 매력적인 묘사에 매료된 두 사람은 플로라를 찾아나선다.
미술사에서 이름을 찾아볼 수 없는 미국 덴버 출신의 이 작가는 사랑 없는 결혼생활을 단호히 정리한 뒤 조각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 역시 파리로 유학 온 자코메티를 만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플로라가 자코메티의 두상을 만든 것처럼 자코메티 역시 그녀의 두상을 만들었다. 그들 사이에는 여느 연인들처럼 굴곡이 있었고 결국 이별했다. 미국에 돌아온 그는 아들을 낳았다.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평생 알 수 없었다.
듀오 예술가는 플로라의 아들을 만나, 싱글맘으로 살아간 엄마를 회상하는 그의 떨리는 입을 포착했고, 아들의 증언과 그들이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투채널 비디오를 완성했다. 2016년, 미국에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읊는 아들이 이끌어가는 다큐멘터리와, 1927년 파리의 아틀리에에서 자코메티의 두상을 만드는 플로라의 모습을 담은 드라마가 서로 등을 맞댄 채 흐른다.
그러나 기억은 불안하며 기억을 간직한 자의 목소리는 진실이자 허구다. 듀오 예술가는 한때 예술가의 삶을 꿈꾸었던 이가 남겨둔 삶의 편린들을 추적하고 조합하면서 사실과 환상 사이를 오가는 기억과 감정에 접근한다. 그리고 그 불확실한 다리 위로 우리의 역사가 흐르고 있음을 암시한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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