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년 연초.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어느 날 쌀쌀한 겨울바람을 가르며 나의 운전대는 파주 임진강가에 위치한 반구정으로 향한다. 임진각 직전에 위치한 당동IC를 빠져나와 2차선 도로로 1㎞ 정도를 더 가면 ‘방촌 황희선생유적지’라는 팻말이 눈에 띈다. 굴다리를 지나자마자 널찍한 주차장이 나를 반긴다. 고즈넉한 한옥담장과 한옥으로 지어진 매표소는 이곳이 잘 정돈된 유적지임을 암시한다. 이곳이 고려말에서 조선조 세종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나라의 살림을 맡았던 청백리 황희 정승(1363~1452)이 말년을 보냈던 데이다. 티케팅을 하고 한옥대문을 들어서면 널따란 정원이 오른쪽에는 방촌기념관, 그리고 왼쪽에는 영당(影堂) 영역으로 나누어 놓은 모습이 보인다. 기념관에서 정승의 일대기를 살펴본 후 영당 쪽을 바라본다. 한바탕 큰 눈이 내린 후라 길다란 담장 중앙에 위치한 삼문 뒤로 몇 채의 한옥들이 주변의 나무들과 어우러져 멋진 설경을 연출한다.
삼문인 청정문을 들어서면 제사를 준비하는 사직재(舍直齋)와 그 우측에 정승의 고손인 월헌 황팽헌(1472~1535)의 신주를 모셔놓은 월헌사(月軒祠)가 위치하고 있다. 월헌사 옆으로 정승의 영당이 있는데 그 주위에 또 다른 담장이 둘러쳐져 있다. 그리고 담장 중앙에 솟을삼문이 있어 이곳이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임을 암시한다. 솟을삼문을 들어서서 맛배지붕에 초익공 형식으로 된 영당의 아늑함에 잠시 추위를 잊어본다. 영당 우측에 있는 팔작지붕의 경모재(景慕齋)는 세월의 때가 많이 배어 있어 고즈넉함이 더하다. 끝 지점에는 어딘가 바라보고 있는 정승의 동상이 놓여 있다. 정승은 그 앞쪽 나지막한 언덕 위에 위치한 2개의 정자에 시선이 맞추어져 있다. 앞쪽에 놓여 있는 정자가 앙지대(仰止臺)인데 이는 후손들이 정승의 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것이다.
뒤쪽에 있는 정자가 반구정(伴鷗亭)으로 이 정자가 정승이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를 벗삼아 여생을 보낸 곳이라 한다. 반구정 앞쪽으로 꽁꽁 얼어붙은 임진강이 겨울의 추위를 짐작하게 한다. 발밑으로 강을 따라 길게 드리워진 철책선은 이곳이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북쪽의 끝 지점임을 알려준다. 저 멀리 북쪽을 이어주는 임진강 철교가 아스라이 보인다. 아마도 정승이 반구정을 통하여 북쪽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마음은 남북 경계 없이 자유로이 넘나드는 갈매기와 같은 평화로움을 후손들이 누렸으면 하는 것이 아닐까?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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