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베니스의 기온은 차다. 반팔을 입고 다니기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그러나 베니스비엔날레의 열기는 계절의 스산함을 밀어내기에 충분하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인파만 놓고 보자면 베니스는 벌써 한여름인 셈이다.
58회를 맞은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의 주제는 ‘흥미로운 시대를 살아가기를’이다. 흥미롭다는 형용사로 인해 왠지 긍정적 의미로 읽히지만, 실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안녕과 평화가 얼마나 위험하고 불안정한 것인지 되묻는다는 게 핵심이다.
살아가기 버거운 세상을 역설적으로 꼬집는 주제 때문인지 79명의 작가들이 내놓은 작품 역시 환경, 난민, 전쟁, 여성, 인종, 소수자 등 당대 인류가 처한 시대 징후에 집중되어 있다. 하나같이 우리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슈들이다.
한반도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나온 철조망과 금속 잔해들을 이용한 이불 작가의 설치작업 ‘오바드V’(2019).
문제는 잘 정돈되어 매끄러운 관람이 가능한 반면, 비엔날레 특유의 역동적 파괴를 체감하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작품 간 갈등은 적으나 서로에게 건조하다. 반드러운 전개에 갇힌 나머지 목소리는 웅얼거리는 수준에 멈춰 있고, 날것 그대로의 생경한 자극을 통한 뜻밖의 미적 가치를 심어주지도 못한다.
그나마 총탄이 박힌 초등학교 콘크리트벽 자체를 전시장으로 가져와 마약과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멕시코의 현실을 그린 테레사 마르골레스나, 종말적 시각으로 희망과 절망, 인간의 운명 등을 축 늘어진 검은색 인체 조각에 투사한 독일 작가 알렉산드라 버켄 등의 작품이 밋밋한 전시에 균열을 낸다.
작은 입자를 실내가 꽉 차게 확대해 시각에 건축적 요소를 결합시킨 중국 작가 리우웨이를 포함한, 환경의 생물학적 순환성을 다룬 한국의 아니카 이와 지미 더럼,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강서경의 설치도 민숭민숭한 흐름에 틈을 벌려 놓는 작품에 속한다. 그러나 기대를 모은 작가 이불은 ‘오바드V’라는 제목의 작업을 선보였으나 최근 과잉이다 싶은 남북문제를 주제로 삼아 신선함이 떨어진다. 심지어 위치마저 좋지 않아 존재감이 약하다.
결과적으로 상업갤러리 디렉터가 지휘한 본전시는 썩 괜찮은 재료와 양념을 갖고도 평범한 요리를 내놓는 데 그쳤다. 민감한 치부인 자본과 정치를 억누른 채 인류 공통의 문제를 다양한 매체로 소화하려 했음에도 ‘문화적 논쟁의 장’이라는 비엔날레의 특성을 살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각자의 언어로 저마다 색깔 있는 예술세계를 펼친 국가관이 보다 흥미롭다.
일례로 박제화된 유리장 내에 광석과 식물을 설치해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피력한 핀란드관이나, 수상도시 베니스를 상상력의 단초로 한 작업으로 인간 삶의 목적과 존재의 본질에 접근한 프랑스관은 당대 미술 흐름과 예술 담론의 틀에 부합한다. 아프리카 식민국가 중 최초로 독립을 쟁취한 가나의 탄생 역사와 자유의지를 담아낸 가나관, 그리고 인형들의 기이한 움직임과 역할을 통해 동일 공간 내에 있음에도 무관심한 인간 상태를 유럽이라는 지역에 빗댄 벨기에관도 시각적 볼거리 이상의 의미를 제공한다.
하지만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를 주제로 한 한국관은 혼란스럽다. 기획자가 밝힌 ‘시각적으로 움직이는 신체와 소리, 빛의 향연’은 과대포장에 가깝고, ‘매혹적으로 펼쳐지는’ ‘감각적인 오디오 비주얼 설치’ 등의 발언은 텍스트 내에 머물 뿐, 현장은 다른 표정을 짓는다. 인정하든 안 하든 내 판단에는 그랬다. 그런데 나만 그리 헤아리진 않을 듯싶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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