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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 보다

‘문외한’ 정치인보다 못한 미술전문가

Hans Haacke. News, 1969/2008. 독일 작가 한스 하케는 예술을 통해 권력과 부조리, 관료주의, 비도덕적 자본주의와 같은 사회적 이슈들을 다뤄왔다. 그의 실증 가능한 사실에 의한 작품들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4월 미술평론가 이선영은 한 매체에 ‘공무원이 책정하는 이 지면의 원고료는?’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해 큰 공감을 얻었다. 모 지자체가 운영하는 창작공간 입주 작가들의 평론을 써서 보냈더니 원고료가 달랑 13만원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관료주의를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많은 예술인들이 그 글에 동의를 표했던 이유는 전문성 따위가 들어설 자리 없는 원칙을 신봉한 채 정량적, 기계적, 보수적으로 일하는 관료제의 견고함을 일찌감치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언급된 사례가 글쓴이만의 황당한 경우는 아니었던 것도 반향에 일조했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숱했다. 얼마 전만 해도 그랬다.


하루는 모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작가로부터 평론을 의뢰받았다. 하지만 거절했다. 일단 지자체가 제시한 A4 1장에 1만3000원이라는 원고료부터 터무니없었다. 원고 장수별 글자 수 등을 감안하여 기준 20% 범위 내에서 가감하여 지급 가능하다고 해도 20여만원 수준의 고료는 지나치게 초현실적이었다. 


작품을 보러 작가 작업실이 위치한 지역까지 오가는 시간과, 평론을 작성하기 위해 보름 가까이 작품과 씨름해야 하는 노동은 계산에 없는 고료도 문제였지만, 내가 적절치 못한 규정의 선례가 된다는 것이야말로 비평을 사양한 이유였다. 20년 넘은 경력의 중견 평론가가 그런 조건에 응한다면 후배들은 정당한 대가와 더욱 멀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그런데 이런 예는 지자체가 정한 강의 수당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일례로 최근 어느 지자체에서 미술 관련 강의를 부탁하면서 강사 수당표를 보내왔다. 아무 잘못 없는 섭외 담당자에게서 받은 그것은 행정안전부 지방자치인재개발원의 ‘강사 수당 및 원고료 등의 지급 기준’이었다. 그곳엔 친절하게 특1~2급에서부터 5급까지 7단계의 등급이 매겨져 있었다. 적용 대상과 시간당 지급 기준까지 상세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미술’ 강의를 하는데 보수는 전·현직 장차관 및 국회의원, 광역자치단체장 등이 미술전문가보다 훨씬 높게 설정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특급’에 해당되어 시간당 초과까지 60만~70만원을 받는데 ‘1급’은 30여만원을 받아 차이가 거의 2배에 달했다.


적어도 시장이나 군수 정도는 되어야 특급이 되는 요상한 표를 보면서 어이없는 웃음이 터졌다. 미술전문가가 미술을 말하는 자리에서조차 ‘미술 문외한’이라 자처하는 정치인보다 낮게 대우하는 구조는 쉽게 납득할 수 없었고, 같은 세금임에도 방송인 김제동 강의에는 1550만원의 예산을 기꺼이 책정하면서 전문 강사에겐 그것의 100분의 1 남짓한 비용을 지급하는 고무줄 잣대엔 할 말을 잃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전문 영역에서의 원고료와 강의료, 심사자문비 등등의 지급 기준은 비전문가인 정책자들이 정한 규정 아래 유지되고 있다. 미술을 알지 못한다면서 미술인들의 지식과 경험값을 임의로 지정하고, 비상식적 예산을 노동의 삯으로 제시하면서 숫자놀음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책상머리 앞에서의 건조한 숫자놀음은 합리적이며 합당함이 존재하는 사회를 요원하게 만들고 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