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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 보다

설 자리 좁은 한국작가들

오스트리아 작가 에르빈 부름의 작품은 세계적인 아트페어나 비엔날레 등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다. 지난해 한 외국화랑을 비롯한 유수의 전시공간들이 기획한 전시에 소개되면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편이다.


많은 전시공간이 해외 작가 작품들로 채워지면서 국내 작가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유수의 갤러리와 국공립미술관들은 외국 작가 모시기에 혈안이고, 한국에 진출한 외국 미술유통업체 역시 한국 작가들에 대한 관심은 그리 높지 않다.


실제로 국내 주요 화랑 중 하나인 국제갤러리는 지난 4월 덴마크 출신 듀오 엘름그린&드라그셋의 전시를 개최한 이후 스위스 출신의 현대미술가 우고 론디노네 작품전을 잇고 있다. 콜롬비아 태생의 오스카 무리요까지 포함해 지난해 말부터 현재까지 개최된 서울 전시의 적지 않은 수가 외국작가들이다.


PKM 갤러리 또한 최근 1년간 진행된 전시의 절반가량을 외국 작가로 채웠다. 학고재갤러리도 구미작가들에게 자주 전시공간을 내주고 있다. 국내 진출한 외국 화랑들의 양태도 비슷하다. 2016년 문을 연 바라캇 컨템포러리는 지금까지 상당수의 전시를 외국 작가들에게 할애했다. 페로탱 갤러리를 포함한 페이스 갤러리, 리만머핀 갤러리 등 여타 외국 갤러리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문제는 국공립미술관 역시 자국 작가들에 대한 애정도가 낮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러시아에 뿌리를 두고 있는 작가인 안톤 비도클과 덴마크의 아스거 욘 전시를 각각 3개월과 5개월에 걸쳐 개최한다. 바로 전엔 독일의 영화감독이자 미디어아티스트인 하룬 파로키와 다다이스트 마르셀 뒤샹 전을 대대적으로 열었다.


기획전 현황도 유사하다. 과천관에서 지난 2월 막을 내린 ‘문명’전 참여작가 130여 명 중 한국 작가는 10% 내외에 머문다. 디지털 체계와 이를 둘러싼 환경을 다룬 기획전 ‘불온한 데이터’ 참여작가 10여명 중 한국작가는 두어명에 불과하다. 대체로 박서보, 김중업, 윤형근 등 몇몇 인지도 높은 작가들을 의무방어전처럼 투입하는 구조다. 중견작가 및 신진작가 지원전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정보가 실시간 공유되는 동시대에서 미술 분야 및 장르, 학제 간 경계는 무너진 지 오래다. 미술언어 자체는 국경이 없다. 그러나 한국 작가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건 한국미술의 미래와 관련된 현실의 문제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독과점에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지닌 일부 갤러리들의 외국작가 사랑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판매를 위축시키고 소장과 향유의 편식을 우려하게 한다. 그렇잖아도 적은 국내 컬렉터들을 흡수하고 있는 외국 화랑들은 국내 군소화랑들의 존속마저 위협하고 있다. 특히 국공립미술관의 편애는 전시기회 기근에 시달리는 작가들에 대한 주의 부재를 증명할뿐더러, 작가 발굴의 가능성마저 차단한다.


이들 화랑과 미술관의 암묵적 키워드는 ‘국제화’이다. 그러나 화랑들이 말하는 내수시장 국제화가 문화사대주의, 선민의식으로 비춰진다면 옳은 방향이 아니다. 미술관이 국제화라는 명분 아래 경쟁력 있는 한국 작가들에게 무심하다는 인상을 심어줄 경우 정책의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 국제화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흐름인 건 사실이지만, 일방적인 국제화는 문화식민화의 다른 말이며 자칫 한 국가의 예술적 바탕을 무너뜨리고 타자화할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