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보나르 ‘목욕하는 여인’, 1925년
피카소가 ‘얼치기 화가’라고 불렀던 피에르 보나르! 그는 정말 인상주의 화가에 불과했을까? 이미 세계 유수의 미술관 전시를 통해 명예를 회복한 보나르는 19세기 말 프랑스 부르주아의 단란하고 내밀한 가정생활을 즐겨 다룬 앵티미슴(Intimisme·실내화파) 경향을 대표하는 나비파 일원이다. 완성된 자신의 작품에 몰래 덧칠을 해온 것으로 유명한 완벽주의자 보나르!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한 여자만을 집요하게 그림 속에 담았다는 것이다. 마치 할 일이라고는 그녀를 훔쳐보는 게 전부인 것처럼 400여점의 작품 속에 담았다.
바로 마르트 드 멜리니(1867~1942). 사람들은 그녀가 어디서 왔으며, 누구인지도 몰랐다. 보나르조차 그녀의 원래 이름이 ‘마리아 부르쟁’이라는 것을 같이 산 지 32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것도 혼인신고를 해야 했기 때문에. 보나르는 26세 때 장례용 조화를 만드는 가게의 점원이었던 24세의 멜리니와 동거에 들어간다. 보나르는 연보랏빛 눈동자를 지닌 작고 창백한 멜리니를 모델로서 아주 흡족해했다.
문제는 그녀가 쉰 살이 넘었을 때조차 보나르가 그녀를 항상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만 그렸다는 사실이다. 폐질환과 청결강박 때문에 늘 온수욕을 즐겼던 멜리니가 목욕 준비를 하고, 욕조에 막 들어서며, 욕조 안 물 속에 길게 누워 있고, 목욕을 끝내고 분가루를 바르는 등 늘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으로 말이다.
멜리니는 자신을 감추는 습관을 지녔고, 타인과의 어떤 교감도 원하지 않았다. 강아지 산책을 핑계로 몰래 친구를 만날 수밖에 없었을 만큼 보나르는 고통스러웠지만 평생 그녀 곁을 떠나지 않았다. 보나르의 사랑은 M 프루스트의 <사라진 여인>을 환기한다.
프루스트는 “그녀는 다른 어떤 이유에서가 아니라 나와 다른 자, 즉 타자이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비밀스러운 것이며, 이 타자성 때문에 결국 나로 환원될 수 없고, 늘 낯선 자로 남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보나르 역시 멜리니의 이타성(異他性), 즉 그녀의 낯섦이 계속 상처를 주는 한에서만 그녀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