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모세’(1513~1516년경, 대리석, 높이 254㎝)상은 교황 율리우스 2세 사망 후 그의 유언에 따라 만든 묘당에 안치될 조상 중 하나였다. 이 조각은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이 새겨진 석판을 받고 내려온 모세가 황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유대인에 분노하는 모습이라고 알려져 있다.
분노의 서곡이든 분노를 자제하는 모습이든, 이 조각상에서 무엇보다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모세의 머리에 솟은 뿔이다. 미켈란젤로는 왜 뿔이 난 모세상을 제작한 것일까? 화가 났다고 뿔을 표현할 정도의 수준은 아닐 테고. 구약성서는 시나이산에서 십계명 석판을 들고 내려오는 모세를 묘사하고 있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다가서자 얼굴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 광선(ray)에 해당되는 히브리어가 ‘keren’인데, 성경이 라틴어로 번역될 때 이 단어가 ‘horn(뿔)’으로 잘못 번역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라틴어판 성서를 읽은 사람들은 모세가 뿔이 났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했던 것이다. 미켈란젤로도 그런 오류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 다른 설은, 고대 사람들은 동물의 뿔에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고, 신적 존재를 이마에 뿔이 나있는 모습으로 형상화하기도 했다. 미켈란젤로 역시 이 사실을 참고했을 가능성이 높다.
모세의 분노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모세는 여러 차례에 걸쳐 폭발적인 분노를 일으킨 사람으로 유명하다. 모세는 지성과 영성을 모두 갖춘 온유한 사람으로, 쉽게 분노하지는 않지만 한번 분노했다 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쏟아내는 것이 거의 쓰나미 수준이었다. 사실 구약시대 모세는 야훼의 대리자로서, 하느님 심정의 대변자라고 할 수 있다. 신심이 깊었지만 사람들과 불화를 자주 일으켰던 미켈란젤로 역시 모세를 통해 자기 주변의 꼴불견인 아첨꾼과 물질만능으로 피폐화된 인간성에 대해 영적인 분노를 토해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