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이론가 레지스 드브레는 <이미지의 삶과 죽음>에서 시각 이미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멸에 대한 욕망에서 시작했다고 말한다. 심지어 고대 그리스 시대에 보지 못한다는 것은 생명을 잃는 것을 뜻했으며, 그래서 눈을 감았다와 숨을 거뒀다는 같은 의미였다는 것이다.
맥락은 약간 다르지만 갤러리 룩스에서 전시 중인 박찬민의 아파트 작업은 시력을 상실해 가는 도심 주거 공간에 대한 이야기로 읽힐 만하다. 대도시의 삶을 이야기할 때, 아파트는 이제 단골처럼 등장하는 작업 대상이기는 하다. 그만큼 일상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박찬민, Blocks 연작 중, BL215375573126950232, 2015
처음에 박찬민은 아파트 벽에 새겨진 단지명을 지우는 연작을 소개하더니, 이번에는 아예 아파트 벽에 난 모든 창문들을 지워버렸다. 아파트의 이름이나 창문을 제거해 버리는 그 순간, 그곳은 집이 아니라 거대한 공산품 블록으로 변해버린다. 이 기괴한 콘크리트 덩어리는 마치 키 낮은 주택가를 침공하러 오는 점령군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촬영 날짜와 지도상의 좌표 등을 조합한 코드를 붙임으로써 장소가 아니라 제품 같은 인상을 더 짙게 만든다. 그가 지워버린 아파트의 창문은 안에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조망의 문제가 아니라, 바깥세상과의 소통을 의미하는 상징으로서의 눈이다. 집의 터와 그 터 주변의 이웃을 배려하지 않은 이 인공물의 창이란 결국은 감긴 눈에 다름 아니다. 눈을 감았다는 말은 삶이 부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파트에 살면서도 답답한 이유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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