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접한 건 1995년에 개봉한 변영주 감독의 영화 <낮은 목소리>를 통해서였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침묵을 깨고 실명으로 희생자임을 밝힌 이래 위안부의 실상에 대한 낮은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던 무렵이었다. 피해자였음에도 마치 죄인인 것 마냥 조용히 웅얼거릴 수밖에 없던 할머니들의 사연은 낮은 소리이니 오히려 더 주의 깊게 들어달라는 묵직한 요청 같았다. 정말 그랬다. ‘열여섯 꽃다운 나이로 인생이 끝났다’는 할머니의 고백은 한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어서 점점 더 크게 자라나곤 했다. 억울함을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할머니들이 점점 늘어날수록 그 소리는 이상하게도 더욱 크고 절박하게 공명을 반복했다.
차진현의 ‘108인의 초상’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기록한 초상 사진이다. 2007년 봄날, 수요시위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들이 그에게 할머니들을 찾아 나서게 만들었다. 검은 천 앞에서 단아하게 선 할머니들은 아무런 설명이 없다면, 카메라 앞에 서기 쑥스러워하는 평범한 분들로만 보인다. 그러나 나이 들어감을 감출 수 없는 굽은 허리와 팬 주름은 꽃다운 나이를 잃어버린 지난 세월의 서러움을 더욱 짙게 만든다. 까맣게 타버린 할머니들의 속마음인지, 슬픈 역사에 대한 조문인지 하필 사진 속 배경마저도 검다. 이렇듯 깊은 심연 앞에서 어느 날 갑자기 일방적으로 찾아온 ‘합의’가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을까. 낮은 목소리는 결코 가볍고 경솔한 소리가 아니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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