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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산골다방

삼천원의 식사 연작. 2014. ⓒ김지연


다방은 우리 아버지 세대의 카페다. 아니 카페 그 이상이었다. 아침에 모닝커피를 시키면 단골손님에게 계란 노른자 하나를 동동 띄워준다. 그리고 하루 종일 다방에서 사무를 본다. 


이들의 호칭은 대개 ‘사장님’이다. 이들을 만나러 온 손님이 드나드니 매상도 올라가고, 때때로 마담이나 여종업원에게 쌍화탕도 사주고 여러 인생사도 들려준다. 이를테면 한국식 ‘살롱’ 문화공간이었던 것이다. 


다방은 어느 때부턴가 ‘티켓 다방’의 형태를 띠며 ‘불온’한 공간이 되었다가 그마저도 사라져가는 향수의 공간으로 변했다. 지금은 도시 한구석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100원짜리 내기 화투도 치고 담소를 나누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지방에 내려가서 지인과 잠시 이야기할 만한 곳을 찾다가 들어간 곳이 ‘산골다방’이었다. 마담은 권태로운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다방 안은 벽이며 천장이며 소파며 심지어 커피 잔까지 모두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2000원짜리 ‘다방커피’ 한 잔씩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자 마담이 슬그머니 우리 곁에 앉았다. 손님은 없고 마담의 신세한탄을 들어주다가 점심때가 되자 우리에게 식사를 권한다. 


시골다방에서 우리 일행은 마담의 권유로 백반을 시켜 먹었다. 마담언니가 한사코 돈을 내버린다. 다방커피 한 잔에 2000원을 받아가지고 이래서야 언제 돈을 벌 것인가. 그러나 마담은 한때 남도 지방에서 밥깨나 먹는 부농의 집에서 태어났다고, 그래서 아끼는 것보다 써야 마음이 편하다고 우리를 안심시킨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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