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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로맨틱 솔저스 이 사진은 달콤하고 유혹적인 크림이 혀끝에서 감도는 듯한 촉감을 느끼게 한다. 핑크와 청록의 조합은 로맨틱하게 다가온다. 화려한 성처럼 우뚝 선 케이크, 그러나 비스듬히 기운 것이 어딘가 불안한 모습이다. 시선을 바닥으로 돌리면 핑크빛 꼬마 병정들과 탱크, 기관총이 진격해 오는 것 같기도 하고 놀이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 무기는 추상적일 수 있다. 아마 게임에서나 다뤄봤을 것이다. 그래서 전투는 ‘해볼 만하고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많은 영화가 세계 1·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다루지만, 관객은 이미 그것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기에 동족이 동족을 죽이는 상처를 안은 채 살아왔지만, 권력은 현실로 존재하는 전쟁에 대한 공포를 그동안 정쟁에.. 더보기
아버지의 시대로부터 작가노트를 읽고 난 후에 작가의 나이가 알고 싶어졌다. 쉰둘, 내 눈으로 보면 딸 같은 나이지만 젊은이들이 보면 ‘쉰 세대’에 속한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나이는 언제쯤일까 생각해본다. ‘아버지의 시대’ 안에는 ‘아버지’라는 키워드와 ‘시대’라는 의미가 겹치면서 여러 역사적 사건들이 오버랩되고 있다. 작가가 말한 아버지의 시대에는 6·25전쟁, 4·19혁명, 5·16군사정변, 6·10민주항쟁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전쟁과 상처, 가난과 독재의 시대였다. 그 시대를 거쳐온 아버지는 늘 권위적이고 무뚝뚝했고 외로웠다. 이선민이 찾아 나선 사진작업은 그런 아버지 시대의 마지막 서사인지도 모른다. 윤병천씨(79)는 18세에 충남서산에서 맨몸으로 올라와 보광동 산동네에 살면서 마을 청소를 하다가 한국.. 더보기
산골다방 다방은 우리 아버지 세대의 카페다. 아니 카페 그 이상이었다. 아침에 모닝커피를 시키면 단골손님에게 계란 노른자 하나를 동동 띄워준다. 그리고 하루 종일 다방에서 사무를 본다. 이들의 호칭은 대개 ‘사장님’이다. 이들을 만나러 온 손님이 드나드니 매상도 올라가고, 때때로 마담이나 여종업원에게 쌍화탕도 사주고 여러 인생사도 들려준다. 이를테면 한국식 ‘살롱’ 문화공간이었던 것이다. 다방은 어느 때부턴가 ‘티켓 다방’의 형태를 띠며 ‘불온’한 공간이 되었다가 그마저도 사라져가는 향수의 공간으로 변했다. 지금은 도시 한구석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100원짜리 내기 화투도 치고 담소를 나누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지방에 내려가서 지인과 잠시 이야기할 만한 곳을 찾다가 들어간 곳이 ‘산골다방’이었다. 마담은 권태로운.. 더보기
디딤돌 영산강을 찍으러 가다가 광주 동하에 들렀더니 ‘만귀정’이라는 조선시대 정자가 보인다. 중학교 때 친구가 살던 동네이기도 했는데 자주 놀러가면서도 이 정자는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다녔다. 정자는 나와는 관계없는 한량들이나 놀던 곳으로 알았다. 우연히 들렀지만 이제 보니 경치도 좋고 정자도 수려했다. 공사 중인지 연못에 물이 없어 운치를 더하지는 않았는데 정자의 기초석이 훤칠하게 높아 디딤돌을 딛고서야 난간에 걸터앉을 수 있었다. 디딤돌은 차돌처럼 야무지고 반질반질하게 윤기가 돌았다. 몇 십 년, 아니 몇 백 년 이 자리에서 ‘아무개’들의 발디딤 노릇을 했으리라. 원래부터 야무진 놈을 가져다 놓았겠지만 누군가의 발에 다지고 다져진 몸매일 것이다. 마당을 건너 토방이 있고 토방 위에는 디딤돌이 놓이는 것이 한옥.. 더보기
들녘에 가득했던 곡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반세기를 훌쩍 지나 고향을 찾았다. 도(道)의 경계만 건너면 닫는 거리인데 그곳으로 가기가 무척 힘들었다. 우리 시대가 그렇듯 만고풍상을 겪은 땅, 그래도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았는데 아픈 기억만 떠올랐기에 찾지 않은 것일까. 얼마 전 우연히 초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 시내 아파트에서 살다가 고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 옛집은 어찌 됐는지 물었다. “아직 그대로 있어야.”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친구와 함께 찾아간 옛집은 의외로 골격이 살아 있었다. 사람이 사는 것 같기도 하고 버려둔 것 같기도 했다. 빈집이 많은 동네를 빠져나오니 영산강이 보였다. 잊고 있었던 터라 갑자기 뜨거운 것이 밀려왔다. 어제는 마음먹고 사진작업을 시작하려고 찾아갔다. 비가 온 뒤라선지.. 더보기
광주시민 1970~1980년대에 서울에서 광주 사투리를 쓰면서 산다는 것은 거의 전과자에 버금가는 취급을 받는 일이었다.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던 1960년대 초등교육을 받은 나는 ‘동학혁명’을 ‘동학란’으로 배웠다. 괜히 농민들이 봉기를 해서 청나라와 일본을 불러들여 일을 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흔히 역사는 결과를 이야기하려 하지만 과정은 몹시 중요한 것이다.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피눈물 나는 헌신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독립은 단순히 외세의 힘으로 얻은 것에 불과했을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을 떠올릴 때 시민들을 향한 무차별한 총기 난사나 지역봉쇄, 언론통제 등 전두환 정권의 악행에 앞서, 길에 나서서 시민군들에게 주먹밥 한 덩이를 쥐여주던 광주 어머니들의 손길과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고 시민군을 병원으로 .. 더보기
자영업자 2016년 초부터 전주를 비롯한 몇몇 도시의 자영업자들을 만나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해 왔다. 이때만 해도 자영업자들의 상황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던 시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부터 그들은 위태위태한 상태였다. IMF 외환위기 이후 실직을 했거나 은퇴가 앞당겨진 사람들이 모았던 자금으로 자영업을 시작하면서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임대료는 올랐다. 인테리어를 위한 큰 비용 투자는 쉽게 가게를 접을 수 없는 위협적 요인이었다. 처음 사진작업을 시작할 때 자영업자의 어려운 처지를 이슈화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자영업자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고 싶었다. 이들은 종업원을 고용하기도 어려워 가족끼리 장시간 쉬는 날 없이 일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몇십 년을 이어온 곳도 있고 개업한 .. 더보기
건지산 옆에 살아요 전주의 ‘건지산’ 근처로 이사 온 지 십년이 훌쩍 넘었다. 거의 매일 이 길을 밟다보니 숲의 들숨 날숨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야트막한 산이지만 오솔길이 정답고 ‘오송제’라는 저수지를 품고 있어 품이 넉넉하다. 편백나무 숲 건너로는 소리문화의전당과 전주동물원이 있고, 산 끝자락에는 의 작가 최명희의 묘지가 있다. 도시 풍경 너머 숲으로 가는 중간에 대지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봄이 오면 매화를 시작으로 복사꽃이 피고 아카시아 향기가 숲 전체를 휘감는다. ‘오송제’에 연꽃이 한창일 때면 소낙비가 자주 온다. 무성한 나무 그늘에서 비를 피하며 젖은 시간을 바라본다. 가을이면 철퍼덕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플라타너스 잎을 밟으며 저물어 가는 한 해의 무게를 느낀다. 겨울에는 누군가의 묘지에 눈이 덮이고 배롱나무.. 더보기
엄마의 새 봄이 오니 새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새소리도 하늘 밖으로 튀고 갓 돋아난 연둣빛 잎사귀 사이로 움직임이 훤히 드러난다. 산까치, 물총새, 꾀꼬리, 뻐꾸기가 저마다 힘찬 소리로 지저귄다. 막상 사진을 찍으려 하니 멀리 달아난다. 그들의 날갯짓이 마치 바다에서 물고기가 유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익산에서 자수공방을 하는 미나 엄마는 일흔넷인데 칠십이 다 되어서 딸의 어깨너머로 자수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제 제법 손에 익기 시작했단다. 흔희들 할머니들은 수놓는 일에 익숙한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소질 여부도 있겠고 자식들과 먹고사느라고 바느질을 잊고 살아온 경우가 많다. 돋보기를 써도 눈이 가물가물해져서 일찍이 포기를 한다. 요즘처럼 디자인이 세련되고 상품성이 있는 자수는 엄두도 못 낸다. 그이의 자수는 배.. 더보기
서귀포 당근 밭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스님이 밭에서 일하는 모습이라고 얼른 생각했다. 광대무변의 바다 같기도 한 이 풍경을 보고 스님이 떠오른 것은 이 모습이 마치 구도의 자세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때려치우고 장사나 하지” 혹은 “농사나 짓지”라는 말을 쉽게 한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장사하는 것’과 ‘농사짓는 일’일지도 모른다. 박사, 의사, 판검사 되기가 힘든 일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웬만한 환경에서 공부만 힘써서 하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생각하는 ‘장사’는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가져오는 일이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더구나 농사는 온전히 자연에 순응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더보기
애도공식 사람의 슬픔은 무게나 부피로 측량할 수 없다. 다만 거리가 있을 뿐이다. “이제 그만큼 했으니 그만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겐 그만큼의 거리가 있는 것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그러나 불행히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은 거의 없다. 나와 내 가족은 절대로 그런 입장에 처하지 않을 것이라고 쉽게 장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요즈음의 코로나19 사태를 보면 그 해답이 명료해진다. 누구든지, 어디에서나 코로나19에 걸릴 불운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4·16 세월호를 기억하게 하는 그날은 매년 다가오고, 아픈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있다. 주용성은 간접적인 목격자이다. 이곳에 시선을 집중한 채 그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세상이 진실과 어떻게 맞서고 있는지 밝히려는 젊은 사진가다. “추도식이 진행되는 동안 현.. 더보기
무연고지 주소가 사라진 집과 골목과 동네의 풍경이 도시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따라서 거쳐간 사람들은 연고지를 잃게 되고 이곳은 유령의 공간이 된다. 치솟은 빌딩의 그림자가 되어 흉터처럼 남아 있는 곳. 도시는 날로 발전하는 반면에 폐허의 공간은 늘어나고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공동체 안에서 기쁨과 슬픔을 같이했던 사람들이 떠나가버린 채 빈집이 그대로 방치된 동네에 들어서면 공포와 아픔을 함께 느낀다. 사람들은 떠났어도 왜 그들의 체취는 방 구석구석의 먼지와 때로 남아서 탄식처럼 다가오는가. 한때는 ‘보금자리’라고 여겨 동고동락했던 침실과 주방은 섬뜩하고 괴기스러운 공간이 되어 사람을 배척하고 있다. 더러는 새 아파트로 떠나고 가난한 자와 늙은이들만 뭉그적거리다가 퇴출당한 곳. 그리하여 빈집은 번지수가.. 더보기
낯선 시간 2002년은 월드컵축구로 온 나라가 흥분의 도가니 속에 있었다. 평소 축구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조차도 덩달아 “대~한~민~국~”을 외치는 바람에 한밤중에도 동네가 들썩들썩했었다. IMF 외환위기 여파로 모두 풀이 죽어 있을 때 축구 경기 하나가 온 국민을 광장으로 이끌어내고 우리 모두를 한마음으로 만든 것이다. 어떤 사건 하나에도 좌우가 갈라서는 오늘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꿈같은 일이었다. 김영경은 저물어가는 대도시의 풍경에 주목하고 있다. 한때 융성했던 거대한 도시가 스스로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쇠락해 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의 프레임은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다. 정직한 기록사진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포스를 느끼게 하는 것은 작가 특유의 색감에 있다. 단순하고 미니멀한 사진에 색깔로써 자신의.. 더보기
하얀 문 어떤 훌륭한 건물도 문을 통해서 들어가지 않으면 그 안을 볼 수 없다. 건물 안뿐 아니라 사람들을 만날 수도 없다. 건물에서 문은 액세서리가 아니라 핵심이다. 아무리 비싸고 멋진 건물이라도 문이 없으면 그것은 한 물체의 덩어리에 불과하다. 우리가 정작 필요로 하는 것은 그 안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문은 소통의 창구이자 폐쇄와 욕망의 장치이기도 하다. 위엄 있게 잘 갖추어진 고급 빌라, 우주공간을 연상케 하는 초현실적인 디자인으로 꾸며진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나는 건물에 들어서면 습관적으로 문을 먼저 확인한다. 나오는 길을 못 찾을까봐서이기도 하고 공간을 못 본 채 눈앞에서 유혹하는 물체에 갇혀 버리지나 않을까 해서다. ‘놓다, 보다’의 사진작업을 하면서 숲에 오브제를 가져다놓고 촬영을 했다. 숲에 문을 .. 더보기
매화 피는데 산새 날고 꽃도 시절을 잘 타고나야 더 빛나게 핀다. 이번 겨울은 포근해서 눈 한번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다. 더 이상 추위가 없을까 했더니 얼마 전에 눈이 펑펑 내리고 강추위가 지나갔다. 우리 아파트 양지바른 화단의 매화는 이미 한겨울부터 가지 끝에 진주알을 머금은 듯 봉오리에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나는 날마다 집을 들고나며 그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아니, 조금 이르지 않니?” 말을 걸어 보는데 눈치도 없이 몇 개의 봉오리를 일찍 터뜨려 놓고는 눈을 뒤집어쓴 채 떨고 있었다. 또 산책길 옆 조그만 텃밭에서 피는 홍매화는 매년 사람들에게 새로운 봄을 알려주는 깜찍하고 가녀린 녀석이다. 이 나무도 피다만 봉오리가 얼어서 피멍이 든 붉은 입술처럼 보였다. 아마도 이번 겨울이 따뜻했기에 더 상처가 깊은 모양이다. 그 .. 더보기
어둠을 이기고 김동욱의 사진은 기록적이고 지시적이다. 그가 지정한 프레임 안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서울은 인구 1000만의 대도시다. 대낮의 혼잡함 속에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함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세상이 어디로 흘러갈지 감을 잡을 수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는 그러한 서울의 밤 풍경에 주목했다. 모든 것이 흘러가버리고 흔적과 기억만 남은 적막한 풍경을 장 노출로 찍어서 야간 조명이 인조 보석처럼 반짝인다. 어쩌면 그의 사진은 ‘외젠 아제’의 풍경처럼 초현실적인 아우라를 보여준다. 거기다 건물의 건립연도와 이력까지 조사해서 밝혀준다. 여기까지 보면 일상성의 낯설게 보기, 기록, 흑백의 장중한 예술적 감각을 갖춘 작품이라 하겠다. 그런데 나는 이 사진을 보면서 요즘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예시한 사진.. 더보기
수선화 봄꽃은 새초롬하다. 눈얼음 속에서 핀 복수초 같은 꽃은 아주 다부지고 결기까지 보인다. 그러지 않고서야 눈밭에서 어찌 꽃을 피우겠는가? 그래도 제비꽃이나 진달래꽃은 가녀리고 연약해 보여 어찌 저것들이 그 질긴 겨울을 뚫고 살아나와 꽃을 피웠을까 싶다. ‘너희들이 언제’ 이만큼 커서 꽃을 피웠느냐고 묻기도 전에 꽃은 또 진다. 그의 당찬 기색을 빨리 알아채지 않으면 그들은 가없이 스러지고 만다. 이른 봄에 수선화 한 송이를 방에 들인다는 것은 새봄을 맞이하는 일이다. 나이가 드니 새봄을 맞는다는 일은 몸 전체가 서로의 세포를 건드려주는 일이다. 그 시작이 수선화의 수줍은 향기와 눈빛이 되고 있다. 아직은 쌀쌀한 기운이 도는 시장 바닥 한구석 종이상자 안에서 자신을 알아봐주기를 기다리는 새침한 소녀 같은 수.. 더보기
마스크 마스크는 원시사회에서 종교적 혹은 주술적 목적으로 얼굴에 페인팅을 한 것을 기원으로 보고 있다. 그 후 변장이나 여성의 얼굴 노출을 금기시하던 시기에 사용되었다. 현대사회에 들어와서는 액세서리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마스크는 코로나19로 세상이 떠들썩한 요즈음엔 생존에 꼭 필요한 물건이 되었다. 매점매석까지 해대는 바람에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다. 남 앞에서 맨 얼굴로 말을 한다는 것이 위협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누구나 마스크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몰라 불안하다. 몇 년 전 메르스를 겪으면서 정부가 얼마나 무력하게 대응했는지 모두들 기억하고 있다. 나는 2015년 ‘놓다 보다’ 사진 작업에서 무책임한 정부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나무에 마스크를 달아놓고 사진을 찍었.. 더보기
문짝집 놋그릇의 품위와 스테인리스의 견고함을 가볍게 제치고 한때 싸고 가볍고 간편해서 많이 사용하던 것이 이제는 발암물질이 나온다고 해서 기피하고 있는 낡고 닳은 알루미늄 양푼에 시선이 간다. 거무스름하게 찌그러진 양푼에는 뽀얀 유백색의 감자가 곱게 깎여져 있다. 오늘 저녁 반찬거리인 모양이다. ‘문짝집’은 원래 대문 만드는 집에 세 들어 살며 식당을 했는데 문짝집은 망하고 식당은 그대로 하고 있다. 입구에는 ‘문짝집’ 간판 아래 ‘왕대포’라는 작은 입간판이 세워져 있지만 주로 백반을 먹으러 와서 막걸리 한 잔씩을 마시고 가는 경우가 많다. 반찬은 할머니의 기분에 따라 맛있는 것이 많이 나오거나 혹은 형편없을 수가 있다. 할머니는 그것이 기분에 따른 것이 아니고 일찍 와서 먹는 사람은 잘 먹고 가고 나중에 온 .. 더보기
‘문득 당신이 행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치는 짧은 인연의 사람들도, 나와 가까운 사람들도, 그리고 나도 행복하면 좋겠다.” 시각장애인 사진가인 이혜성의 말이다. 이 말을 들으니 매일 밤낮으로 자기 걱정을 하며 기껏해야 내 가족, 내 편인 사람들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나의 작품과 글로 인하여 힘들고 지친 몸과 마음이 위로받기를 바란다. 누군가 당신을 위해 지켜보고, 응원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는 걸 이따금씩 떠올리면 좋겠다.” 시각장애인 한유림의 글이다. “별들이 반짝이던 그날. 4년 전의 아픔은 아직도 우리의 일상과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한유림의 바나나 두 개는 ‘2016년 4월16일’ 그날 찬 바닷속에 있던 친구들을 향하는 그리움의 표시다. 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따뜻한 안부를 전하고 싶은 것이다. 이상봉 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