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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20.03.27 낯선 시간
  2. 2020.03.20 하얀 문
  3. 2020.03.13 매화 피는데 산새 날고
  4. 2020.03.06 어둠을 이기고
  5. 2020.02.28 수선화
  6. 2020.02.21 마스크
  7. 2020.02.14 문짝집
  8. 2020.02.07 ‘문득 당신이 행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9. 2020.01.31 삼산이용원
  10. 2020.01.24 돼지고기 한 근
  11. 2020.01.17 3000원의 식사
  12. 2020.01.10 ‘근대화상회’ 그 후

따뜻한 그늘

천국보다 낯선. 2002. ⓒ김영경


2002년은 월드컵축구로 온 나라가 흥분의 도가니 속에 있었다. 평소 축구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조차도 덩달아 “대~한~민~국~”을 외치는 바람에 한밤중에도 동네가 들썩들썩했었다. IMF 외환위기 여파로 모두 풀이 죽어 있을 때 축구 경기 하나가 온 국민을 광장으로 이끌어내고 우리 모두를 한마음으로 만든 것이다. 어떤 사건 하나에도 좌우가 갈라서는 오늘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꿈같은 일이었다.


김영경은 저물어가는 대도시의 풍경에 주목하고 있다. 한때 융성했던 거대한 도시가 스스로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쇠락해 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의 프레임은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다. 정직한 기록사진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포스를 느끼게 하는 것은 작가 특유의 색감에 있다. 단순하고 미니멀한 사진에 색깔로써 자신의 의도를 드러낸다. 필터나 컴퓨터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황량한 도시의 감각을 그녀 특유의 색감으로 살리고 있다.


월드컵 열기는 사라지고 가을이 왔다. 함성이 사라진 도시의 한 종합경기장은 텅 비어 있다. 교교한 정적이 흐르고 주차장 입구로 들어가는 붉은 아스콘 바닥은 빨간 강물이 되어 흐른다. 그것은 아픔도 슬픔도 아닌 그저 낯선 시간의 풍경이다. 경기장 옆 아파트 벽면의 그림에서 황홀했던 시간의 흔적을 잠시 엿볼 수 있다. 


나라 안팎을 돌아보니 온통 암울한 환경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오늘의 고통도 시간과 함께 도도한 세월의 강물이 되어 흘러가리라 믿는다.


<김지연 |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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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놓다, 보다’ 연작 2015. ⓒ김지연


어떤 훌륭한 건물도 문을 통해서 들어가지 않으면 그 안을 볼 수 없다. 건물 안뿐 아니라 사람들을 만날 수도 없다. 건물에서 문은 액세서리가 아니라 핵심이다. 아무리 비싸고 멋진 건물이라도 문이 없으면 그것은 한 물체의 덩어리에 불과하다. 우리가 정작 필요로 하는 것은 그 안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문은 소통의 창구이자 폐쇄와 욕망의 장치이기도 하다. 위엄 있게 잘 갖추어진 고급 빌라, 우주공간을 연상케 하는 초현실적인 디자인으로 꾸며진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나는 건물에 들어서면 습관적으로 문을 먼저 확인한다. 나오는 길을 못 찾을까봐서이기도 하고 공간을 못 본 채 눈앞에서 유혹하는 물체에 갇혀 버리지나 않을까 해서다.


‘놓다, 보다’의 사진작업을 하면서 숲에 오브제를 가져다놓고 촬영을 했다. 숲에 문을 달고 싶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다. 자연은 평온해 보이지만 그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겨우 살아남았을 것이다. 수만마일을 날아가는 철새가 숭고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생존’이라는 명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확실한 경계를 설정해 보고 싶었다. 실존을 위한 자유나 자유를 위한 자유라는 관념을 얼마나 오랫동안 허비하며 살아왔던가. 이제 나는 그 반대편에 서서 그 무언가를 규정짓기 위해 새벽에 뒷산으로 올라가서 문틀을 만들고 문을 달아서 촬영을 시작했다. 자연은 나의 이런 행위가 그릇된 욕망, 무분별한 소유,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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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피는데 산새 날고. 2020. ⓒ김지연


꽃도 시절을 잘 타고나야 더 빛나게 핀다. 이번 겨울은 포근해서 눈 한번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다. 더 이상 추위가 없을까 했더니 얼마 전에 눈이 펑펑 내리고 강추위가 지나갔다. 우리 아파트 양지바른 화단의 매화는 이미 한겨울부터 가지 끝에 진주알을 머금은 듯 봉오리에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나는 날마다 집을 들고나며 그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아니, 조금 이르지 않니?” 말을 걸어 보는데 눈치도 없이 몇 개의 봉오리를 일찍 터뜨려 놓고는 눈을 뒤집어쓴 채 떨고 있었다. 또 산책길 옆 조그만 텃밭에서 피는 홍매화는 매년 사람들에게 새로운 봄을 알려주는 깜찍하고 가녀린 녀석이다. 이 나무도 피다만 봉오리가 얼어서 피멍이 든 붉은 입술처럼 보였다. 아마도 이번 겨울이 따뜻했기에 더 상처가 깊은 모양이다. 그 뒤로도 지나치다보면 꽃만 피어났을 뿐이지 생기를 잃고 있어 안타까웠다.


올봄은 생각지 못한 바이러스 때문에 모두가 힘겹다. 이렇게 세상이 어지럽다보니 꽃을 보는 일도 드물어지고 어쩌다 핀 꽃을 보아도 그저 덤덤한 기분이 든다. 오늘은 스산한 산책길을 걷다가 동네 뒷산 양지바른 곳에 매화 한 그루가 만개한 것을 보고 다가갔다. 무심코 사진을 찍는데 산새 한 마리가 날아와 가지 끝에 앉는다. 녀석은 주위에 신경도 안 쓰고 유유자적 이 가지 저 가지로 날아다니며 꽃을 바라보다가 한 잎씩 따먹는 것이다. 아~, 평화! 


그날이 또 그날 같은 특별하지 않은 날들마저 그리워진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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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심야산보. 2019. ⓒ 김동욱


김동욱의 사진은 기록적이고 지시적이다. 그가 지정한 프레임 안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서울은 인구 1000만의 대도시다. 대낮의 혼잡함 속에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함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세상이 어디로 흘러갈지 감을 잡을 수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는 그러한 서울의 밤 풍경에 주목했다. 모든 것이 흘러가버리고 흔적과 기억만 남은 적막한 풍경을 장 노출로 찍어서 야간 조명이 인조 보석처럼 반짝인다. 어쩌면 그의 사진은 ‘외젠 아제’의 풍경처럼 초현실적인 아우라를 보여준다. 거기다 건물의 건립연도와 이력까지 조사해서 밝혀준다. 


여기까지 보면 일상성의 낯설게 보기, 기록, 흑백의 장중한 예술적 감각을 갖춘 작품이라 하겠다. 그런데 나는 이 사진을 보면서 요즘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예시한 사진 같기도 하다. 밝은 대낮인데도 한밤중 풍경처럼 적막한 낯선 모습의 거리. 사람의 웃음소리가 잦아든 동네, 셔터를 내린 수많은 상가, 불 꺼진 건물, 금속가게 셔터에 그려진 낙서 등은 자칫 현재의 분위기를 떠오르게 한다. 


김동욱이 촬영한 시기에는 이 교교한 밤이 내일이면 어느 때와 다름없이 어둠이 걷히고 서서히 밝은 아침이 오고 또 많은 인파로 몸살을 앓을 것이라는 약속 같은 미래가 있었다. 우리는 지금 그러한 아침은 과연 오는 것인가 하는 염려를 품고 잠이 든다. 하지만 어떤 사악한 질병과 의도도 우리 국민의 굳건한 의지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 우리는 늘 당당히 맞서 이겨냈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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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삼천 원의 식사’ 연작. 2014. ⓒ김지연


봄꽃은 새초롬하다. 눈얼음 속에서 핀 복수초 같은 꽃은 아주 다부지고 결기까지 보인다. 그러지 않고서야 눈밭에서 어찌 꽃을 피우겠는가? 그래도 제비꽃이나 진달래꽃은 가녀리고 연약해 보여 어찌 저것들이 그 질긴 겨울을 뚫고 살아나와 꽃을 피웠을까 싶다. ‘너희들이 언제’ 이만큼 커서 꽃을 피웠느냐고 묻기도 전에 꽃은 또 진다. 그의 당찬 기색을 빨리 알아채지 않으면 그들은 가없이 스러지고 만다. 


이른 봄에 수선화 한 송이를 방에 들인다는 것은 새봄을 맞이하는 일이다. 나이가 드니 새봄을 맞는다는 일은 몸 전체가 서로의 세포를 건드려주는 일이다. 그 시작이 수선화의 수줍은 향기와 눈빛이 되고 있다. 아직은 쌀쌀한 기운이 도는 시장 바닥 한구석 종이상자 안에서 자신을 알아봐주기를 기다리는 새침한 소녀 같은 수선화와 눈이 마주치자 발길이 멈추어졌다. 꽃이라면 우아하게 고운 진열장 안에 있을 일이지 시장 길바닥에서 그 서늘한 자존심으로 몸을 웅크리고 있는지. 그에게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나는 이것을 찍으며 주저 없이 ‘삼천 원의 식사’ 연작에 포함된다고 생각했다. 봄은 스스로 오지만 나의 봄은 맞이하는 것이다. 그 대가로 한 끼의 식사값이 대수겠는가. 꽃을 파는 주인장 역시 수선화를 닮았다. 여러 개의 꽃봉오리가 달린 수선화 화분 한 개에 삼천 원이란다. 종이상자 안에서 병아리처럼 옹기종기 고개를 내밀고 있던 수선화 하나가 엷은 향기를 풍기며 내 품으로 왔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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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놓다 보다 연작, 2015. ⓒ 김지연

 

마스크는 원시사회에서 종교적 혹은 주술적 목적으로 얼굴에 페인팅을 한 것을 기원으로 보고 있다. 그 후 변장이나 여성의 얼굴 노출을 금기시하던 시기에 사용되었다. 현대사회에 들어와서는 액세서리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마스크는 코로나19로 세상이 떠들썩한 요즈음엔 생존에 꼭 필요한 물건이 되었다. 매점매석까지 해대는 바람에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다. 남 앞에서 맨 얼굴로 말을 한다는 것이 위협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누구나 마스크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몰라 불안하다. 몇 년 전 메르스를 겪으면서 정부가 얼마나 무력하게 대응했는지 모두들 기억하고 있다.

 

나는 2015년 ‘놓다 보다’ 사진 작업에서 무책임한 정부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나무에 마스크를 달아놓고 사진을 찍었다. 나무에 매달린 채 소리 없는 함성을 지르는 마스크는 우의적이면서 현실이다. 메르스를 경험하면서 이런 괴병이 다시는 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또 혼란스러운 사태를 겪게 되었다. 이 모두가 사람에게서 기인한 것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며칠간 나오지 않아 잠시 한시름을 놓는 사이, 대구에서 확진자가 무더기로 쏟아지고 서울에서도 복수의 확진자가 나왔다. 중국의 사망자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고 하니, 우리 국민이 느끼는 불안감은 몹시 크고 앞이 막막한 심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 탓만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여야와 국민이 합심하여 우리의 안전을 지켜내야 할 것이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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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삼천원의 식사’ 연작. 2014. ⓒ김지연


놋그릇의 품위와 스테인리스의 견고함을 가볍게 제치고 한때 싸고 가볍고 간편해서 많이 사용하던 것이 이제는 발암물질이 나온다고 해서 기피하고 있는 낡고 닳은 알루미늄 양푼에 시선이 간다. 거무스름하게 찌그러진 양푼에는 뽀얀 유백색의 감자가 곱게 깎여져 있다. 오늘 저녁 반찬거리인 모양이다.


‘문짝집’은 원래 대문 만드는 집에 세 들어 살며 식당을 했는데 문짝집은 망하고 식당은 그대로 하고 있다. 입구에는 ‘문짝집’ 간판 아래 ‘왕대포’라는 작은 입간판이 세워져 있지만 주로 백반을 먹으러 와서 막걸리 한 잔씩을 마시고 가는 경우가 많다. 반찬은 할머니의 기분에 따라 맛있는 것이 많이 나오거나 혹은 형편없을 수가 있다. 할머니는 그것이 기분에 따른 것이 아니고 일찍 와서 먹는 사람은 잘 먹고 가고 나중에 온 사람은 못 먹을 수밖에 없단다. 일정한 양을 만들어 놓고 그것만 팔면 그 메뉴는 끝이다.


주인 할머니의 기분이라는 것은, 가령 손님이 백반을 먹으러 갔는데 콩나물국밥밖에 안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할머니의 이 일관된(?) 성격 때문에 이제는 아무 상관도 없어진 ‘문짝집’ 상호를 그대로 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손님이 왕이라거나 하는 말은 누가 만든 것인가? 때로는 주인의 사정에 맞출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마침 30년 된 단골부부가 찾아오니 막걸리 한 사발에 시원한 콩나물국밥 한 뚝배기를 내놓는다. 손님은 묵은 김치 한 통을 선물로 들고 왔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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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4.16. ⓒ한유림


“스치는 짧은 인연의 사람들도, 나와 가까운 사람들도, 그리고 나도 행복하면 좋겠다.” 시각장애인 사진가인 이혜성의 말이다. 이 말을 들으니 매일 밤낮으로 자기 걱정을 하며 기껏해야 내 가족, 내 편인 사람들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나의 작품과 글로 인하여 힘들고 지친 몸과 마음이 위로받기를 바란다. 누군가 당신을 위해 지켜보고, 응원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는 걸 이따금씩 떠올리면 좋겠다.” 시각장애인 한유림의 글이다. “별들이 반짝이던 그날. 4년 전의 아픔은 아직도 우리의 일상과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한유림의 바나나 두 개는 ‘2016년 4월16일’ 그날 찬 바닷속에 있던 친구들을 향하는 그리움의 표시다. 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따뜻한 안부를 전하고 싶은 것이다. 이상봉 선생의 지도로 시작한 이들의 사진은, 보이는 것을 찍는 것이 아니다. 오랜 생각과 희망과 그리움과 한을 가슴속에 삭이다가 어느 순간 터져 나온, 우주를 떠돌며 빛나는 별과 같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우리들의 그 수많은 상처의 말과 위선적인 행위들이 부끄러운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의 사진이 시각장애인의 것이므로 주목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지만, 자신들이 짊어지고 온 온갖 한계와 도전을 이겨내며 예술로 향한 의지가 빛나기에 한결 가치가 있다. 이 힘든 세상에 모두를 끌어안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이 새삼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갖게 한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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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자영업자 연작. 2016. ⓒ김지연


삼산이용원에 가면 늘 웃음이 나온다. 사진전 ‘삼천원의 식사’와 ‘자영업자’를 준비할 때, 몇 번이고 기웃거렸던 곳이다. 서로 다른 주제의 사진을 찍는데도 그때마다 끌리는 곳이었다. 일찍이 ‘나는 이발소에 간다’라는 주제로 작업을 했었다. 주변에서는 내가 이발관에 관심을 갖는 일이 여자로서 드문 일이라고들 했다. 미용실에 밀려 사라지게 된다든가 하는 이야기에 앞서 한때 ‘남자들의 공간’이었던 곳에서 나는 시큼털털한 면도용 크림 냄새와 함께 음험(?)한 농담이 배어 있을 것 같은 곳, 내가 어린 시절 할아버지를 따라가서 의자 팔걸이에 얹힌 판자에 걸터앉아 머리를 자르던 곳. 이발소는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붙잡고 함께 늙어가고 있다.


우리 동네에 있는 삼산이용원의 무심한 주인과 노인장들의 대화는 볼 때마다 웃음을 자아낸다. 특별히 머리를 깎으러 오지 않아도 매일 이곳에 오는 단골들은 정해져 있다. 이용원 안에 들어서면 작은 도마에 생간을 올려놓고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할아버지들과 마주한다. 이들은 낮술로 인해 볼이 늘 선홍빛으로 물들어 있다. ‘자영업자’ 동영상에서 나뿐 아니라 보는 사람들도 다 이 부분에 와서 웃음을 터뜨렸다. 주인장과 인터뷰를 하고 있으면 할아버지들은 자기도 대화에 끼고 싶어서 플라스틱 의자를 발로 툭툭 차고 다니며 시선을 끈다. 그러다가도 수줍은 소년들처럼 나무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도 한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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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원의 식사 연작, 2014. ⓒ 김지연


내가 어렸을 때는, 돼지고기와 함께 동네에서 만든 두부 몇 점과 김장 김치를 숭숭 썰어 넣어 끓인 찌개가 겨울철의 별미였다. 눈길을 따라 마을 안 가게까지 가서 두부 한 모를 사올 때, 손은 시렸지만 뜨끈뜨끈한 김치찌개가 올려진 밥상을 보면 추위가 싹 가시곤 했다.


구례장에 가니 돼지고기를 탁자에 푸짐하게 올려놓고 팔고 있다. 정육점 앞이었지만 난전이나 마찬가지다. 이제는 농촌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에 가까이 와서야 돼지고기나 소고기가 귀하던 시절의 향수를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요즈음엔 동네 정육점에 가면 손쉽게 신선한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부위별로 살 수 있다. 그러니 고기를 먹는 날이 특별한 날이 아니다. 예전처럼 명절이나 대소사가 있을 때만 먹는 음식이 아니기에 귀하다고 할 것도 없다. 그러나 지금도 시골 장날에는 ‘어머니’ ‘아버지’들이 장에 나오면 푸줏간에 들려 ‘좋은 부위’로 고기 근이나 끊어간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서민들에겐 비싼 소고기보다는 싼 돼지고기에 눈이 먼저 갈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에는 잔칫날에 돼지 한 마리를 잡으면 오줌통은 이미 사내아이들의 차지가 되어 축구공으로 쓰이고, 머리 따로 내장 따로 부위별로 잘라놓고 서로 나누어 가져가던 생각이 난다. 시골 장은 아직도 이런 풍경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정육점 주인이 손에 들고 있는 고기가 한 근(600g)이다. 앞다리 부위로 한 근에 6000원인데 5000원만 내라고 한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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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삼천원의 식사 연작. 2014. ⓒ 김지연


행운집 할매는 자기가 나온 책 <삼천 원의 식사>(눈빛)를 가져다주러 간 나를 반긴다. 지금은 시장이 모두 새로운 구조로 바뀌었지만, 이전에는 세 평 남짓한 낡은 가게에 탁자 두어 개와 등받이 없는 나무의자 몇 개가 전부인 허름한 국숫집이었다. 처음 찾아간 날이었다. 중년 남자 둘이 들어와 앉자마자 그곳의 분위기가 객쩍은지 한 남자가 친구를 가리켜 무슨 회사 전무라고 하니까 주인 할머니가 코웃음을 쳤다. “여긴 시인도 오구먼요.” 나는 그 시인이 누구인지는 묻지 않았지만 ‘시인’을 주저 없이 우선으로 여기는 주인장의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이 집의 메뉴는 잔치국수, 비빔국수, 팥 칼국수, 동지 죽으로 단출하다. 잔치국수는 맑은 장국에 양념간장 한 술 넣고 애호박 채 몇 가닥 얹은 국물 맛이 시원하고, 애기상추와 직접 담근 고추장을 넣어 손으로 조물조물 무친 비빔국수도 맛깔 난다. 막걸리 한 병을 시켜도 눌린 돼지 머리와 얼갈이김치 안주가 나온다. 국수 씻을 때 곁에 서 있으면 국수 몇 가닥을 집어 올려서 손가락에 감아 입에 넣어준다. “맛나제라. 이것이 젤로 맛나.” 흐흐 웃음이 절로 난다. 잔치국수 시켜놓고 옆에서 주문한 팥 칼국수가 맛있겠다고 하자 한 국자 나누어 끓여서 작은 그릇에 떠준다. 늘 무심한 얼굴 뒤에 이런 정이 숨어 있다. ‘행운집’ 할매는 십년 전에 3000원 하던 국수값을 500원 더 올릴까 말까를 망설이면서 아직도 3000원을 받고 있다.


<김지연 |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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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상회 연작. 2010. ⓒ 김지연


‘근대화상회’를 찍고 10년이 지났다. 어느 날 한 남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근대화상회’ 주인장의 둘째 사위인데 <근대화상회> 책에 나온 ‘장인’어른의 사진을 사용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다음날 큰딸 부부와 작은딸 부부라면서 네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그들 모두가 ‘근대화상회’가 있는 전북 진안군 백운면 같은 동네 친구들로 아버지 때부터 막역한 관계여서 결혼도 위·아랫집으로 사돈을 맺은 것이다. 


백운장은 임실, 성수, 마령, 진안, 백운 등지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야말로 장사진을 치던 시절이 있었다. 물건 판돈을 미처 주워 담을 수가 없어서 이불 홑청에 모아두었다가 저녁에 식구들이 모여앉아 꾸깃꾸깃한 돈을 밤새 펴는 것이 일이었다고 큰사위가 입담 좋게 늘어놓았다. 작은사위는 많은 자료를 엮어서 가져왔다. 이미 사라진 ‘근대화상회’를 중심으로 ‘가족사’를 책으로 엮어 보겠다고 가편집을 해서 들고 온 것이다. 


흥미로운 생각이 들어 책이 만들어지면 가져오라고 당부를 하면서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에서 엮은 <진안골 졸업사진첩>을 선물로 주었다. 


오늘 둘째 사위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졸업사진 책에서 ‘장인’어른의 모습을 찾았다며 그 내력까지 적어 보냈다. ‘1946년(14세) 6월. 초등학교 6학년이던 해 1945년 해방이 되자, 나라가 어수선하여지고 다음해(1946) 3월이 되었어도 졸업식은 연기되고, 그해 여름에 졸업식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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