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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에 해당되는 글 24건

  1. 2020.06.19 로맨틱 솔저스
  2. 2020.06.12 아버지의 시대로부터 (1)
  3. 2020.06.05 산골다방
  4. 2020.05.29 디딤돌
  5. 2020.05.22 들녘에 가득했던 곡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6. 2020.05.15 광주시민
  7. 2020.05.08 자영업자
  8. 2020.05.04 건지산 옆에 살아요
  9. 2020.04.24 엄마의 새
  10. 2020.04.17 서귀포 당근 밭
  11. 2020.04.10 애도공식
  12. 2020.04.03 무연고지
  13. 2020.03.27 낯선 시간
  14. 2020.03.20 하얀 문
  15. 2020.03.13 매화 피는데 산새 날고
  16. 2020.03.06 어둠을 이기고
  17. 2020.02.28 수선화
  18. 2020.02.21 마스크
  19. 2020.02.14 문짝집
  20. 2020.02.07 ‘문득 당신이 행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로맨틱 솔저스. 2011. ⓒ 임안나


이 사진은 달콤하고 유혹적인 크림이 혀끝에서 감도는 듯한 촉감을 느끼게 한다. 핑크와 청록의 조합은 로맨틱하게 다가온다. 화려한 성처럼 우뚝 선 케이크, 그러나 비스듬히 기운 것이 어딘가 불안한 모습이다. 시선을 바닥으로 돌리면 핑크빛 꼬마 병정들과 탱크, 기관총이 진격해 오는 것 같기도 하고 놀이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 무기는 추상적일 수 있다. 아마 게임에서나 다뤄봤을 것이다. 그래서 전투는 ‘해볼 만하고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많은 영화가 세계 1·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다루지만, 관객은 이미 그것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기에 동족이 동족을 죽이는 상처를 안은 채 살아왔지만, 권력은 현실로 존재하는 전쟁에 대한 공포를 그동안 정쟁에 이용해 왔으므로 국민들은 오히려 무감각해졌다.


임안나 작가는 그동안 무감각해진 전쟁의 공포를 학습하는 작업을 해왔다. 달콤한 핑크색 케이크에 오륜기라도 되는 양 다섯 개의 촛불이 축제의 분위기를 낸다. 작고 예쁜 분홍색 과자 같아서 병사 하나를 집어서 입으로 가져가 맛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알레고리 형식 안에서 작가의 상상력과 예술적 감각이 두드러져 보인다. 사진은 평상시에 눈여겨보지 못했던 불안을 인식하게 한다. 미니어처 탱크와 병사의 모습 뒤에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모든 나쁜 요소들이 감추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19, 남북문제, 강대국들의 패권 대결 등.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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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시대로부터. 2019. ⓒ이선민

작가노트를 읽고 난 후에 작가의 나이가 알고 싶어졌다. 쉰둘, 내 눈으로 보면 딸 같은 나이지만 젊은이들이 보면 ‘쉰 세대’에 속한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나이는 언제쯤일까 생각해본다.


‘아버지의 시대’ 안에는 ‘아버지’라는 키워드와 ‘시대’라는 의미가 겹치면서 여러 역사적 사건들이 오버랩되고 있다. 작가가 말한 아버지의 시대에는 6·25전쟁, 4·19혁명, 5·16군사정변, 6·10민주항쟁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전쟁과 상처, 가난과 독재의 시대였다. 그 시대를 거쳐온 아버지는 늘 권위적이고 무뚝뚝했고 외로웠다. 이선민이 찾아 나선 사진작업은 그런 아버지 시대의 마지막 서사인지도 모른다.


윤병천씨(79)는 18세에 충남서산에서 맨몸으로 올라와 보광동 산동네에 살면서 마을 청소를 하다가 한국조명의 선구자인 장병갑 박사의 눈에 띄어 국일 방전관 조수로 들어갔다. 당시의 한국은 전기사정이 열악해서 공장이 멈춘 늦은 밤에야 전기가 들어와서 집 안을 밝히던 시절이었다. 필라멘트 전구에서 형광등으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그는 형광등 제조 기술을 생산 공장에 전수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성공한 지금은 아들 윤승현씨(49)가 대를 이어 오고 있다.


이선민은 이 시대가 눈길을 주지 않는 ‘연금술사’ 같은 아버지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겪어온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기록하고 있다. 최고의 조명기술자가 필라멘트 전구 하나를 켜고 앉아 있는 모습은 가히 명품이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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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삼천원의 식사 연작. 2014. ⓒ김지연


다방은 우리 아버지 세대의 카페다. 아니 카페 그 이상이었다. 아침에 모닝커피를 시키면 단골손님에게 계란 노른자 하나를 동동 띄워준다. 그리고 하루 종일 다방에서 사무를 본다. 


이들의 호칭은 대개 ‘사장님’이다. 이들을 만나러 온 손님이 드나드니 매상도 올라가고, 때때로 마담이나 여종업원에게 쌍화탕도 사주고 여러 인생사도 들려준다. 이를테면 한국식 ‘살롱’ 문화공간이었던 것이다. 


다방은 어느 때부턴가 ‘티켓 다방’의 형태를 띠며 ‘불온’한 공간이 되었다가 그마저도 사라져가는 향수의 공간으로 변했다. 지금은 도시 한구석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100원짜리 내기 화투도 치고 담소를 나누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지방에 내려가서 지인과 잠시 이야기할 만한 곳을 찾다가 들어간 곳이 ‘산골다방’이었다. 마담은 권태로운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다방 안은 벽이며 천장이며 소파며 심지어 커피 잔까지 모두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2000원짜리 ‘다방커피’ 한 잔씩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자 마담이 슬그머니 우리 곁에 앉았다. 손님은 없고 마담의 신세한탄을 들어주다가 점심때가 되자 우리에게 식사를 권한다. 


시골다방에서 우리 일행은 마담의 권유로 백반을 시켜 먹었다. 마담언니가 한사코 돈을 내버린다. 다방커피 한 잔에 2000원을 받아가지고 이래서야 언제 돈을 벌 것인가. 그러나 마담은 한때 남도 지방에서 밥깨나 먹는 부농의 집에서 태어났다고, 그래서 아끼는 것보다 써야 마음이 편하다고 우리를 안심시킨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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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영산강연작. 2020. ⓒ김지연


영산강을 찍으러 가다가 광주 동하에 들렀더니 ‘만귀정’이라는 조선시대 정자가 보인다. 중학교 때 친구가 살던 동네이기도 했는데 자주 놀러가면서도 이 정자는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다녔다. 정자는 나와는 관계없는 한량들이나 놀던 곳으로 알았다. 우연히 들렀지만 이제 보니 경치도 좋고 정자도 수려했다. 공사 중인지 연못에 물이 없어 운치를 더하지는 않았는데 정자의 기초석이 훤칠하게 높아 디딤돌을 딛고서야 난간에 걸터앉을 수 있었다.


디딤돌은 차돌처럼 야무지고 반질반질하게 윤기가 돌았다. 몇 십 년, 아니 몇 백 년 이 자리에서 ‘아무개’들의 발디딤 노릇을 했으리라. 원래부터 야무진 놈을 가져다 놓았겠지만 누군가의 발에 다지고 다져진 몸매일 것이다. 마당을 건너 토방이 있고 토방 위에는 디딤돌이 놓이는 것이 한옥의 전형일 것이다. 디딤돌 위에는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어 가족의 출타 여부를 알리기도 했다. 이제는 서양식 주택과 아파트 생활에 밀려 한옥 마당의 디딤돌은 사라지고 없다.


하기야 모두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 세상이니 누구를 위해서 발디딤이 되려고 하겠는가. 그러나 누군가가 자기를 딛고 올라선다는 것이 꺼려져야만 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세상을 밝히는 좋은 사람들이 있고 스스로 디딤돌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사회가 이만하지 않겠는가. 이제는 자취를 알 수 없는 옛 친구 집을 훑어보다가 정자 아래서 당당하게 버티고 있는 디딤돌이 눈에 들어왔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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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연작. 2020. ⓒ김지연


반세기를 훌쩍 지나 고향을 찾았다. 도(道)의 경계만 건너면 닫는 거리인데 그곳으로 가기가 무척 힘들었다. 우리 시대가 그렇듯 만고풍상을 겪은 땅, 그래도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았는데 아픈 기억만 떠올랐기에 찾지 않은 것일까. 얼마 전 우연히 초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 시내 아파트에서 살다가 고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 옛집은 어찌 됐는지 물었다. “아직 그대로 있어야.”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친구와 함께 찾아간 옛집은 의외로 골격이 살아 있었다. 사람이 사는 것 같기도 하고 버려둔 것 같기도 했다. 빈집이 많은 동네를 빠져나오니 영산강이 보였다. 잊고 있었던 터라 갑자기 뜨거운 것이 밀려왔다.


어제는 마음먹고 사진작업을 시작하려고 찾아갔다. 비가 온 뒤라선지 영산강에는 탁한 물결이 넘실거렸다. 강변을 지나다가 들판에 있는 밀밭을 보고 발길을 멈췄다. 예전에는 영산강 유역이 온통 평야여서 여름에는 보리와 밀, 가을에는 벼가 익어 들판을 그득하게 채웠다. 그래도 배가 고파서 언제 흰 쌀밥 한 그릇 제대로 먹을 수 있나 생각했었다. 지금은 쌀이 남아돌아가도 들녘이 텅 빈 느낌이다. 논농사 대신에 밭농사가 늘어나고 대지는 비닐하우스 속으로 숨어들어갔다. 비가 내려도 멈출 사이 없이 흘러가버린 무심한 땅에 인적은 드물다.


바람에 흔들리는 밀밭에 서 있자니 흐르는 시간이 부질없는데, 바람은 다시 밀려와 들녘으로 물결처럼 퍼져갔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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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5·18을 생각한다> 중. 1998. ⓒ김민정


1970~1980년대에 서울에서 광주 사투리를 쓰면서 산다는 것은 거의 전과자에 버금가는 취급을 받는 일이었다.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던 1960년대 초등교육을 받은 나는 ‘동학혁명’을 ‘동학란’으로 배웠다. 괜히 농민들이 봉기를 해서 청나라와 일본을 불러들여 일을 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흔히 역사는 결과를 이야기하려 하지만 과정은 몹시 중요한 것이다.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피눈물 나는 헌신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독립은 단순히 외세의 힘으로 얻은 것에 불과했을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을 떠올릴 때 시민들을 향한 무차별한 총기 난사나 지역봉쇄, 언론통제 등 전두환 정권의 악행에 앞서, 길에 나서서 시민군들에게 주먹밥 한 덩이를 쥐여주던 광주 어머니들의 손길과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고 시민군을 병원으로 실어 나르던 택시기사들의 그 몸부림을 먼저 떠올린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 문재학은 5월26일 밤 어머니 김길자씨와의 통화에서 ‘엄마, 아무래도 창근이가 죽은 거 같아요. 긍께 창근이 생각해서라도 여기서 조금만 더 심부름하고 갈게’라고 하더니 27일 새벽에 도청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고 사진가 김민정은 사진집 <5·18을 생각한다>에서 기술하고 있다. 당시 희생자들은 ‘내 친구’ ‘내 이웃’이 이유 없이 구타당하고 살해당하는 것을 보고 분연히 함께 일어섰던 것이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숭고한 믿음과 선에 대한 실천적 의지였기 때문에 5월의 정신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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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자영업자 연작. 2016. ⓒ김지연


2016년 초부터 전주를 비롯한 몇몇 도시의 자영업자들을 만나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해 왔다. 이때만 해도 자영업자들의 상황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던 시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부터 그들은 위태위태한 상태였다. IMF 외환위기 이후 실직을 했거나 은퇴가 앞당겨진 사람들이 모았던 자금으로 자영업을 시작하면서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임대료는 올랐다. 인테리어를 위한 큰 비용 투자는 쉽게 가게를 접을 수 없는 위협적 요인이었다.


처음 사진작업을 시작할 때 자영업자의 어려운 처지를 이슈화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자영업자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고 싶었다. 이들은 종업원을 고용하기도 어려워 가족끼리 장시간 쉬는 날 없이 일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몇십 년을 이어온 곳도 있고 개업한 지 2년 만에 문을 닫은 곳도 있었다. 사진과 인터뷰를 통해 자영업자들이 겪고 있는 일상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끌고 가고자 했다. ‘뉴 명보석’의 금은방 벽에는 수많은 시계가 작동을 하고 진열대 안에는 아기의 돌 기념 반지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주인장은 오랫동안 금은 세공 일을 해왔기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소비 형태는 급격히 온라인으로 쏠리고 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들은 실의에 빠져 있다. 자영업자는 우리 사회의 저변을 이루고 있다. 그들의 기반이 무너지지 않도록 국가와 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최선의 방책을 마련하기를 바란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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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산 연작, 2018. ⓒ김지연


전주의 ‘건지산’ 근처로 이사 온 지 십년이 훌쩍 넘었다. 거의 매일 이 길을 밟다보니 숲의 들숨 날숨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야트막한 산이지만 오솔길이 정답고 ‘오송제’라는 저수지를 품고 있어 품이 넉넉하다. 편백나무 숲 건너로는 소리문화의전당과 전주동물원이 있고, 산 끝자락에는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묘지가 있다. 도시 풍경 너머 숲으로 가는 중간에 대지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봄이 오면 매화를 시작으로 복사꽃이 피고 아카시아 향기가 숲 전체를 휘감는다. ‘오송제’에 연꽃이 한창일 때면 소낙비가 자주 온다. 무성한 나무 그늘에서 비를 피하며 젖은 시간을 바라본다. 가을이면 철퍼덕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플라타너스 잎을 밟으며 저물어 가는 한 해의 무게를 느낀다. 겨울에는 누군가의 묘지에 눈이 덮이고 배롱나무 가지에 소복이 눈이 올라와 앉으면, 파란 하늘에 참새 떼가 바람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나이가 들면 자연히 외로워진다. 몸도 마음도 단순해지고 싶다. 점점 사람과 만나는 일보다 자연에 눈길이 가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건지산’ 옆에 살며 매일 계절에 따라 제비꽃, 복사꽃, 엉겅퀴, 아기붓꽃, 상사화, 물푸레나무, 단풍나무, 콩새, 소쩍새, 수꿩, 운이 좋으면 산을 가로지르는 고라니를 만날 수 있다. 산책을 나가서 이들의 모습을 꼼꼼히 담다보니 많은 사진들이 모아졌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기록하다가 좀 색다르게 수채화 같은 사진도 찍어본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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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엄마의 작업. 2020. 시공례


봄이 오니 새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새소리도 하늘 밖으로 튀고 갓 돋아난 연둣빛 잎사귀 사이로 움직임이 훤히 드러난다. 산까치, 물총새, 꾀꼬리, 뻐꾸기가 저마다 힘찬 소리로 지저귄다. 막상 사진을 찍으려 하니 멀리 달아난다. 그들의 날갯짓이 마치 바다에서 물고기가 유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익산에서 자수공방을 하는 미나 엄마는 일흔넷인데 칠십이 다 되어서 딸의 어깨너머로 자수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제 제법 손에 익기 시작했단다. 흔희들 할머니들은 수놓는 일에 익숙한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소질 여부도 있겠고 자식들과 먹고사느라고 바느질을 잊고 살아온 경우가 많다. 돋보기를 써도 눈이 가물가물해져서 일찍이 포기를 한다. 요즘처럼 디자인이 세련되고 상품성이 있는 자수는 엄두도 못 낸다.


그이의 자수는 배워서 시작한 것이 아니어서 디자인도 어수룩하다. 딸이 헝겊에 연필로 적당히 그림을 그려주면 자기 마음대로 모양과 색깔을 메꾸니, 참으로 어설픈데도 정겹고 사랑스럽다. 동백꽃도, 해당화도 수를 잘 놓는다. 특히 새를 수놓을 때 뛰어난 상상력과 애정이 엿보인다. 모든 새는 각각의 개성을 갖고 있어 다른 어떤 작업보다 빛난다.


엄마는 왜 새를 좋아할까? 그저 새가 좋다고 한다. “날 수 있으니까.” 엄마가 수놓은 꽃과 새들로 방 안이 가득하다. 남들에게 보여주면 좋겠다고 딸이 엄마의 수를 가슴에 품고 찾아왔다. “엄마의 수는 형식이 없어요. 내키는 대로 하시니까요.”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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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풍경(小小風景). 2007. ⓒ이한구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스님이 밭에서 일하는 모습이라고 얼른 생각했다. 광대무변의 바다 같기도 한 이 풍경을 보고 스님이 떠오른 것은 이 모습이 마치 구도의 자세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때려치우고 장사나 하지” 혹은 “농사나 짓지”라는 말을 쉽게 한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장사하는 것’과 ‘농사짓는 일’일지도 모른다. 박사, 의사, 판검사 되기가 힘든 일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웬만한 환경에서 공부만 힘써서 하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생각하는 ‘장사’는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가져오는 일이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더구나 농사는 온전히 자연에 순응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지금은 농사도 기계화와 함께 경제활동의 일부분이 되었지만 공동체 문화나 질박한 삶이 가능했던 것은 자연과 함께했을 때일 것이다.


이한구는 서귀포 오름으로 가는 길에 당근 밭에서 일하는 농부를 지나쳐갔다.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이 농부를 마주한다. 그 긴 밭을 왔다 갔다 반복하면서 일하는 모습을 롱 숏으로 담았다. 웬만한 사진작가였다면 가까이 가서 일하는 사람의 표정을 담으려고 했을 것이다. 이한구의 ‘소소풍경’은 바람과 시간과 우주의 질서를 찾아가는 음유시인이 떠오른다. 그의 작업은 한없이 뜨겁고 끝없이 차가운 대기의 온도를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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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애도공식. 2018. ⓒ주용성


사람의 슬픔은 무게나 부피로 측량할 수 없다. 다만 거리가 있을 뿐이다. “이제 그만큼 했으니 그만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겐 그만큼의 거리가 있는 것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그러나 불행히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은 거의 없다. 나와 내 가족은 절대로 그런 입장에 처하지 않을 것이라고 쉽게 장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요즈음의 코로나19 사태를 보면 그 해답이 명료해진다. 누구든지, 어디에서나 코로나19에 걸릴 불운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4·16 세월호를 기억하게 하는 그날은 매년 다가오고, 아픈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있다. 주용성은 간접적인 목격자이다. 이곳에 시선을 집중한 채 그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세상이 진실과 어떻게 맞서고 있는지 밝히려는 젊은 사진가다.


“추도식이 진행되는 동안 현장을 통제하면서 많은 정치인과 공무원 그리고 유가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참석자는 추도식을 먼 거리에서 지켜봤다. TV 생중계로 지켜본 세월호 참사와 동거차도에서 바라본 사고해역, 목포항 펜스 너머의 세월호 선체를 떠올리며 좀처럼 좁혀지지 않을 거리감에 대해 생각했다. 마지막 추도사가 끝나고 구역별로 조가 나눠진 추도객들은 유족들부터 순차적으로 제단에 올라 분향했다. 마지막 헌화가 마무리되자 무대 위 길게 줄을 선 유족들이 호명 순서대로 위패와 영정을 받아 가슴에 품고 내려왔다. 정부 합동분향소가 철거되기 전 열린 마지막 추도식이었다.” 2년 전 세월호 영결식 이야기다.


<김지연 |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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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빈방에 서다 연작, 2015. ⓒ김지연


주소가 사라진 집과 골목과 동네의 풍경이 도시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따라서 거쳐간 사람들은 연고지를 잃게 되고 이곳은 유령의 공간이 된다. 치솟은 빌딩의 그림자가 되어 흉터처럼 남아 있는 곳. 도시는 날로 발전하는 반면에 폐허의 공간은 늘어나고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공동체 안에서 기쁨과 슬픔을 같이했던 사람들이 떠나가버린 채 빈집이 그대로 방치된 동네에 들어서면 공포와 아픔을 함께 느낀다. 


사람들은 떠났어도 왜 그들의 체취는 방 구석구석의 먼지와 때로 남아서 탄식처럼 다가오는가. 한때는 ‘보금자리’라고 여겨 동고동락했던 침실과 주방은 섬뜩하고 괴기스러운 공간이 되어 사람을 배척하고 있다. 더러는 새 아파트로 떠나고 가난한 자와 늙은이들만 뭉그적거리다가 퇴출당한 곳. 그리하여 빈집은 번지수가 사라지고 ‘연고’가 끊기는 곳이 되고 만다. 


고급아파트가 늘어나고 서울 어느 지역의 집 한 채는 수십억원에 거래된다는 뉴스가 경제면을 장식하는데, 이런 빈집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빈집에 들어설 때마다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인생이 느껴져서 그들이 새겨두고 간 어린아이의 웃음소리와 가족이 둘러앉은 저녁 식탁을 떠올린다. 


나는 단순히 빈집을 찍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두고 간 가족사와 그들을 둘러싼 시대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싶다. 희망이 없는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곳은 없다. 어쩌면 인간이 먼저 절망하고 있을 뿐이다.


<김지연 |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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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천국보다 낯선. 2002. ⓒ김영경


2002년은 월드컵축구로 온 나라가 흥분의 도가니 속에 있었다. 평소 축구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조차도 덩달아 “대~한~민~국~”을 외치는 바람에 한밤중에도 동네가 들썩들썩했었다. IMF 외환위기 여파로 모두 풀이 죽어 있을 때 축구 경기 하나가 온 국민을 광장으로 이끌어내고 우리 모두를 한마음으로 만든 것이다. 어떤 사건 하나에도 좌우가 갈라서는 오늘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꿈같은 일이었다.


김영경은 저물어가는 대도시의 풍경에 주목하고 있다. 한때 융성했던 거대한 도시가 스스로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쇠락해 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의 프레임은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다. 정직한 기록사진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포스를 느끼게 하는 것은 작가 특유의 색감에 있다. 단순하고 미니멀한 사진에 색깔로써 자신의 의도를 드러낸다. 필터나 컴퓨터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황량한 도시의 감각을 그녀 특유의 색감으로 살리고 있다.


월드컵 열기는 사라지고 가을이 왔다. 함성이 사라진 도시의 한 종합경기장은 텅 비어 있다. 교교한 정적이 흐르고 주차장 입구로 들어가는 붉은 아스콘 바닥은 빨간 강물이 되어 흐른다. 그것은 아픔도 슬픔도 아닌 그저 낯선 시간의 풍경이다. 경기장 옆 아파트 벽면의 그림에서 황홀했던 시간의 흔적을 잠시 엿볼 수 있다. 


나라 안팎을 돌아보니 온통 암울한 환경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오늘의 고통도 시간과 함께 도도한 세월의 강물이 되어 흘러가리라 믿는다.


<김지연 |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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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놓다, 보다’ 연작 2015. ⓒ김지연


어떤 훌륭한 건물도 문을 통해서 들어가지 않으면 그 안을 볼 수 없다. 건물 안뿐 아니라 사람들을 만날 수도 없다. 건물에서 문은 액세서리가 아니라 핵심이다. 아무리 비싸고 멋진 건물이라도 문이 없으면 그것은 한 물체의 덩어리에 불과하다. 우리가 정작 필요로 하는 것은 그 안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문은 소통의 창구이자 폐쇄와 욕망의 장치이기도 하다. 위엄 있게 잘 갖추어진 고급 빌라, 우주공간을 연상케 하는 초현실적인 디자인으로 꾸며진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나는 건물에 들어서면 습관적으로 문을 먼저 확인한다. 나오는 길을 못 찾을까봐서이기도 하고 공간을 못 본 채 눈앞에서 유혹하는 물체에 갇혀 버리지나 않을까 해서다.


‘놓다, 보다’의 사진작업을 하면서 숲에 오브제를 가져다놓고 촬영을 했다. 숲에 문을 달고 싶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다. 자연은 평온해 보이지만 그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겨우 살아남았을 것이다. 수만마일을 날아가는 철새가 숭고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생존’이라는 명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확실한 경계를 설정해 보고 싶었다. 실존을 위한 자유나 자유를 위한 자유라는 관념을 얼마나 오랫동안 허비하며 살아왔던가. 이제 나는 그 반대편에 서서 그 무언가를 규정짓기 위해 새벽에 뒷산으로 올라가서 문틀을 만들고 문을 달아서 촬영을 시작했다. 자연은 나의 이런 행위가 그릇된 욕망, 무분별한 소유,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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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피는데 산새 날고. 2020. ⓒ김지연


꽃도 시절을 잘 타고나야 더 빛나게 핀다. 이번 겨울은 포근해서 눈 한번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다. 더 이상 추위가 없을까 했더니 얼마 전에 눈이 펑펑 내리고 강추위가 지나갔다. 우리 아파트 양지바른 화단의 매화는 이미 한겨울부터 가지 끝에 진주알을 머금은 듯 봉오리에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나는 날마다 집을 들고나며 그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아니, 조금 이르지 않니?” 말을 걸어 보는데 눈치도 없이 몇 개의 봉오리를 일찍 터뜨려 놓고는 눈을 뒤집어쓴 채 떨고 있었다. 또 산책길 옆 조그만 텃밭에서 피는 홍매화는 매년 사람들에게 새로운 봄을 알려주는 깜찍하고 가녀린 녀석이다. 이 나무도 피다만 봉오리가 얼어서 피멍이 든 붉은 입술처럼 보였다. 아마도 이번 겨울이 따뜻했기에 더 상처가 깊은 모양이다. 그 뒤로도 지나치다보면 꽃만 피어났을 뿐이지 생기를 잃고 있어 안타까웠다.


올봄은 생각지 못한 바이러스 때문에 모두가 힘겹다. 이렇게 세상이 어지럽다보니 꽃을 보는 일도 드물어지고 어쩌다 핀 꽃을 보아도 그저 덤덤한 기분이 든다. 오늘은 스산한 산책길을 걷다가 동네 뒷산 양지바른 곳에 매화 한 그루가 만개한 것을 보고 다가갔다. 무심코 사진을 찍는데 산새 한 마리가 날아와 가지 끝에 앉는다. 녀석은 주위에 신경도 안 쓰고 유유자적 이 가지 저 가지로 날아다니며 꽃을 바라보다가 한 잎씩 따먹는 것이다. 아~, 평화! 


그날이 또 그날 같은 특별하지 않은 날들마저 그리워진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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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심야산보. 2019. ⓒ 김동욱


김동욱의 사진은 기록적이고 지시적이다. 그가 지정한 프레임 안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서울은 인구 1000만의 대도시다. 대낮의 혼잡함 속에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함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세상이 어디로 흘러갈지 감을 잡을 수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는 그러한 서울의 밤 풍경에 주목했다. 모든 것이 흘러가버리고 흔적과 기억만 남은 적막한 풍경을 장 노출로 찍어서 야간 조명이 인조 보석처럼 반짝인다. 어쩌면 그의 사진은 ‘외젠 아제’의 풍경처럼 초현실적인 아우라를 보여준다. 거기다 건물의 건립연도와 이력까지 조사해서 밝혀준다. 


여기까지 보면 일상성의 낯설게 보기, 기록, 흑백의 장중한 예술적 감각을 갖춘 작품이라 하겠다. 그런데 나는 이 사진을 보면서 요즘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예시한 사진 같기도 하다. 밝은 대낮인데도 한밤중 풍경처럼 적막한 낯선 모습의 거리. 사람의 웃음소리가 잦아든 동네, 셔터를 내린 수많은 상가, 불 꺼진 건물, 금속가게 셔터에 그려진 낙서 등은 자칫 현재의 분위기를 떠오르게 한다. 


김동욱이 촬영한 시기에는 이 교교한 밤이 내일이면 어느 때와 다름없이 어둠이 걷히고 서서히 밝은 아침이 오고 또 많은 인파로 몸살을 앓을 것이라는 약속 같은 미래가 있었다. 우리는 지금 그러한 아침은 과연 오는 것인가 하는 염려를 품고 잠이 든다. 하지만 어떤 사악한 질병과 의도도 우리 국민의 굳건한 의지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 우리는 늘 당당히 맞서 이겨냈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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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삼천 원의 식사’ 연작. 2014. ⓒ김지연


봄꽃은 새초롬하다. 눈얼음 속에서 핀 복수초 같은 꽃은 아주 다부지고 결기까지 보인다. 그러지 않고서야 눈밭에서 어찌 꽃을 피우겠는가? 그래도 제비꽃이나 진달래꽃은 가녀리고 연약해 보여 어찌 저것들이 그 질긴 겨울을 뚫고 살아나와 꽃을 피웠을까 싶다. ‘너희들이 언제’ 이만큼 커서 꽃을 피웠느냐고 묻기도 전에 꽃은 또 진다. 그의 당찬 기색을 빨리 알아채지 않으면 그들은 가없이 스러지고 만다. 


이른 봄에 수선화 한 송이를 방에 들인다는 것은 새봄을 맞이하는 일이다. 나이가 드니 새봄을 맞는다는 일은 몸 전체가 서로의 세포를 건드려주는 일이다. 그 시작이 수선화의 수줍은 향기와 눈빛이 되고 있다. 아직은 쌀쌀한 기운이 도는 시장 바닥 한구석 종이상자 안에서 자신을 알아봐주기를 기다리는 새침한 소녀 같은 수선화와 눈이 마주치자 발길이 멈추어졌다. 꽃이라면 우아하게 고운 진열장 안에 있을 일이지 시장 길바닥에서 그 서늘한 자존심으로 몸을 웅크리고 있는지. 그에게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나는 이것을 찍으며 주저 없이 ‘삼천 원의 식사’ 연작에 포함된다고 생각했다. 봄은 스스로 오지만 나의 봄은 맞이하는 것이다. 그 대가로 한 끼의 식사값이 대수겠는가. 꽃을 파는 주인장 역시 수선화를 닮았다. 여러 개의 꽃봉오리가 달린 수선화 화분 한 개에 삼천 원이란다. 종이상자 안에서 병아리처럼 옹기종기 고개를 내밀고 있던 수선화 하나가 엷은 향기를 풍기며 내 품으로 왔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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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놓다 보다 연작, 2015. ⓒ 김지연

 

마스크는 원시사회에서 종교적 혹은 주술적 목적으로 얼굴에 페인팅을 한 것을 기원으로 보고 있다. 그 후 변장이나 여성의 얼굴 노출을 금기시하던 시기에 사용되었다. 현대사회에 들어와서는 액세서리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마스크는 코로나19로 세상이 떠들썩한 요즈음엔 생존에 꼭 필요한 물건이 되었다. 매점매석까지 해대는 바람에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다. 남 앞에서 맨 얼굴로 말을 한다는 것이 위협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누구나 마스크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몰라 불안하다. 몇 년 전 메르스를 겪으면서 정부가 얼마나 무력하게 대응했는지 모두들 기억하고 있다.

 

나는 2015년 ‘놓다 보다’ 사진 작업에서 무책임한 정부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나무에 마스크를 달아놓고 사진을 찍었다. 나무에 매달린 채 소리 없는 함성을 지르는 마스크는 우의적이면서 현실이다. 메르스를 경험하면서 이런 괴병이 다시는 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또 혼란스러운 사태를 겪게 되었다. 이 모두가 사람에게서 기인한 것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며칠간 나오지 않아 잠시 한시름을 놓는 사이, 대구에서 확진자가 무더기로 쏟아지고 서울에서도 복수의 확진자가 나왔다. 중국의 사망자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고 하니, 우리 국민이 느끼는 불안감은 몹시 크고 앞이 막막한 심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 탓만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여야와 국민이 합심하여 우리의 안전을 지켜내야 할 것이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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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삼천원의 식사’ 연작. 2014. ⓒ김지연


놋그릇의 품위와 스테인리스의 견고함을 가볍게 제치고 한때 싸고 가볍고 간편해서 많이 사용하던 것이 이제는 발암물질이 나온다고 해서 기피하고 있는 낡고 닳은 알루미늄 양푼에 시선이 간다. 거무스름하게 찌그러진 양푼에는 뽀얀 유백색의 감자가 곱게 깎여져 있다. 오늘 저녁 반찬거리인 모양이다.


‘문짝집’은 원래 대문 만드는 집에 세 들어 살며 식당을 했는데 문짝집은 망하고 식당은 그대로 하고 있다. 입구에는 ‘문짝집’ 간판 아래 ‘왕대포’라는 작은 입간판이 세워져 있지만 주로 백반을 먹으러 와서 막걸리 한 잔씩을 마시고 가는 경우가 많다. 반찬은 할머니의 기분에 따라 맛있는 것이 많이 나오거나 혹은 형편없을 수가 있다. 할머니는 그것이 기분에 따른 것이 아니고 일찍 와서 먹는 사람은 잘 먹고 가고 나중에 온 사람은 못 먹을 수밖에 없단다. 일정한 양을 만들어 놓고 그것만 팔면 그 메뉴는 끝이다.


주인 할머니의 기분이라는 것은, 가령 손님이 백반을 먹으러 갔는데 콩나물국밥밖에 안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할머니의 이 일관된(?) 성격 때문에 이제는 아무 상관도 없어진 ‘문짝집’ 상호를 그대로 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손님이 왕이라거나 하는 말은 누가 만든 것인가? 때로는 주인의 사정에 맞출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마침 30년 된 단골부부가 찾아오니 막걸리 한 사발에 시원한 콩나물국밥 한 뚝배기를 내놓는다. 손님은 묵은 김치 한 통을 선물로 들고 왔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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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4.16. ⓒ한유림


“스치는 짧은 인연의 사람들도, 나와 가까운 사람들도, 그리고 나도 행복하면 좋겠다.” 시각장애인 사진가인 이혜성의 말이다. 이 말을 들으니 매일 밤낮으로 자기 걱정을 하며 기껏해야 내 가족, 내 편인 사람들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나의 작품과 글로 인하여 힘들고 지친 몸과 마음이 위로받기를 바란다. 누군가 당신을 위해 지켜보고, 응원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는 걸 이따금씩 떠올리면 좋겠다.” 시각장애인 한유림의 글이다. “별들이 반짝이던 그날. 4년 전의 아픔은 아직도 우리의 일상과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한유림의 바나나 두 개는 ‘2016년 4월16일’ 그날 찬 바닷속에 있던 친구들을 향하는 그리움의 표시다. 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따뜻한 안부를 전하고 싶은 것이다. 이상봉 선생의 지도로 시작한 이들의 사진은, 보이는 것을 찍는 것이 아니다. 오랜 생각과 희망과 그리움과 한을 가슴속에 삭이다가 어느 순간 터져 나온, 우주를 떠돌며 빛나는 별과 같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우리들의 그 수많은 상처의 말과 위선적인 행위들이 부끄러운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의 사진이 시각장애인의 것이므로 주목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지만, 자신들이 짊어지고 온 온갖 한계와 도전을 이겨내며 예술로 향한 의지가 빛나기에 한결 가치가 있다. 이 힘든 세상에 모두를 끌어안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이 새삼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갖게 한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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