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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0.01.24 돼지고기 한 근
  2. 2020.01.17 3000원의 식사
  3. 2020.01.10 ‘근대화상회’ 그 후

삼천원의 식사 연작, 2014. ⓒ 김지연


내가 어렸을 때는, 돼지고기와 함께 동네에서 만든 두부 몇 점과 김장 김치를 숭숭 썰어 넣어 끓인 찌개가 겨울철의 별미였다. 눈길을 따라 마을 안 가게까지 가서 두부 한 모를 사올 때, 손은 시렸지만 뜨끈뜨끈한 김치찌개가 올려진 밥상을 보면 추위가 싹 가시곤 했다.


구례장에 가니 돼지고기를 탁자에 푸짐하게 올려놓고 팔고 있다. 정육점 앞이었지만 난전이나 마찬가지다. 이제는 농촌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에 가까이 와서야 돼지고기나 소고기가 귀하던 시절의 향수를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요즈음엔 동네 정육점에 가면 손쉽게 신선한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부위별로 살 수 있다. 그러니 고기를 먹는 날이 특별한 날이 아니다. 예전처럼 명절이나 대소사가 있을 때만 먹는 음식이 아니기에 귀하다고 할 것도 없다. 그러나 지금도 시골 장날에는 ‘어머니’ ‘아버지’들이 장에 나오면 푸줏간에 들려 ‘좋은 부위’로 고기 근이나 끊어간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서민들에겐 비싼 소고기보다는 싼 돼지고기에 눈이 먼저 갈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에는 잔칫날에 돼지 한 마리를 잡으면 오줌통은 이미 사내아이들의 차지가 되어 축구공으로 쓰이고, 머리 따로 내장 따로 부위별로 잘라놓고 서로 나누어 가져가던 생각이 난다. 시골 장은 아직도 이런 풍경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정육점 주인이 손에 들고 있는 고기가 한 근(600g)이다. 앞다리 부위로 한 근에 6000원인데 5000원만 내라고 한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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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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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삼천원의 식사 연작. 2014. ⓒ 김지연


행운집 할매는 자기가 나온 책 <삼천 원의 식사>(눈빛)를 가져다주러 간 나를 반긴다. 지금은 시장이 모두 새로운 구조로 바뀌었지만, 이전에는 세 평 남짓한 낡은 가게에 탁자 두어 개와 등받이 없는 나무의자 몇 개가 전부인 허름한 국숫집이었다. 처음 찾아간 날이었다. 중년 남자 둘이 들어와 앉자마자 그곳의 분위기가 객쩍은지 한 남자가 친구를 가리켜 무슨 회사 전무라고 하니까 주인 할머니가 코웃음을 쳤다. “여긴 시인도 오구먼요.” 나는 그 시인이 누구인지는 묻지 않았지만 ‘시인’을 주저 없이 우선으로 여기는 주인장의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이 집의 메뉴는 잔치국수, 비빔국수, 팥 칼국수, 동지 죽으로 단출하다. 잔치국수는 맑은 장국에 양념간장 한 술 넣고 애호박 채 몇 가닥 얹은 국물 맛이 시원하고, 애기상추와 직접 담근 고추장을 넣어 손으로 조물조물 무친 비빔국수도 맛깔 난다. 막걸리 한 병을 시켜도 눌린 돼지 머리와 얼갈이김치 안주가 나온다. 국수 씻을 때 곁에 서 있으면 국수 몇 가닥을 집어 올려서 손가락에 감아 입에 넣어준다. “맛나제라. 이것이 젤로 맛나.” 흐흐 웃음이 절로 난다. 잔치국수 시켜놓고 옆에서 주문한 팥 칼국수가 맛있겠다고 하자 한 국자 나누어 끓여서 작은 그릇에 떠준다. 늘 무심한 얼굴 뒤에 이런 정이 숨어 있다. ‘행운집’ 할매는 십년 전에 3000원 하던 국수값을 500원 더 올릴까 말까를 망설이면서 아직도 3000원을 받고 있다.


<김지연 |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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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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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상회 연작. 2010. ⓒ 김지연


‘근대화상회’를 찍고 10년이 지났다. 어느 날 한 남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근대화상회’ 주인장의 둘째 사위인데 <근대화상회> 책에 나온 ‘장인’어른의 사진을 사용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다음날 큰딸 부부와 작은딸 부부라면서 네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그들 모두가 ‘근대화상회’가 있는 전북 진안군 백운면 같은 동네 친구들로 아버지 때부터 막역한 관계여서 결혼도 위·아랫집으로 사돈을 맺은 것이다. 


백운장은 임실, 성수, 마령, 진안, 백운 등지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야말로 장사진을 치던 시절이 있었다. 물건 판돈을 미처 주워 담을 수가 없어서 이불 홑청에 모아두었다가 저녁에 식구들이 모여앉아 꾸깃꾸깃한 돈을 밤새 펴는 것이 일이었다고 큰사위가 입담 좋게 늘어놓았다. 작은사위는 많은 자료를 엮어서 가져왔다. 이미 사라진 ‘근대화상회’를 중심으로 ‘가족사’를 책으로 엮어 보겠다고 가편집을 해서 들고 온 것이다. 


흥미로운 생각이 들어 책이 만들어지면 가져오라고 당부를 하면서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에서 엮은 <진안골 졸업사진첩>을 선물로 주었다. 


오늘 둘째 사위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졸업사진 책에서 ‘장인’어른의 모습을 찾았다며 그 내력까지 적어 보냈다. ‘1946년(14세) 6월. 초등학교 6학년이던 해 1945년 해방이 되자, 나라가 어수선하여지고 다음해(1946) 3월이 되었어도 졸업식은 연기되고, 그해 여름에 졸업식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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