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시대로부터. 2019. ⓒ이선민
작가노트를 읽고 난 후에 작가의 나이가 알고 싶어졌다. 쉰둘, 내 눈으로 보면 딸 같은 나이지만 젊은이들이 보면 ‘쉰 세대’에 속한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나이는 언제쯤일까 생각해본다.
‘아버지의 시대’ 안에는 ‘아버지’라는 키워드와 ‘시대’라는 의미가 겹치면서 여러 역사적 사건들이 오버랩되고 있다. 작가가 말한 아버지의 시대에는 6·25전쟁, 4·19혁명, 5·16군사정변, 6·10민주항쟁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전쟁과 상처, 가난과 독재의 시대였다. 그 시대를 거쳐온 아버지는 늘 권위적이고 무뚝뚝했고 외로웠다. 이선민이 찾아 나선 사진작업은 그런 아버지 시대의 마지막 서사인지도 모른다.
윤병천씨(79)는 18세에 충남서산에서 맨몸으로 올라와 보광동 산동네에 살면서 마을 청소를 하다가 한국조명의 선구자인 장병갑 박사의 눈에 띄어 국일 방전관 조수로 들어갔다. 당시의 한국은 전기사정이 열악해서 공장이 멈춘 늦은 밤에야 전기가 들어와서 집 안을 밝히던 시절이었다. 필라멘트 전구에서 형광등으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그는 형광등 제조 기술을 생산 공장에 전수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성공한 지금은 아들 윤승현씨(49)가 대를 이어 오고 있다.
이선민은 이 시대가 눈길을 주지 않는 ‘연금술사’ 같은 아버지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겪어온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기록하고 있다. 최고의 조명기술자가 필라멘트 전구 하나를 켜고 앉아 있는 모습은 가히 명품이다.
<김지연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