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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광주시민

<5·18을 생각한다> 중. 1998. ⓒ김민정


1970~1980년대에 서울에서 광주 사투리를 쓰면서 산다는 것은 거의 전과자에 버금가는 취급을 받는 일이었다.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던 1960년대 초등교육을 받은 나는 ‘동학혁명’을 ‘동학란’으로 배웠다. 괜히 농민들이 봉기를 해서 청나라와 일본을 불러들여 일을 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흔히 역사는 결과를 이야기하려 하지만 과정은 몹시 중요한 것이다.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피눈물 나는 헌신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독립은 단순히 외세의 힘으로 얻은 것에 불과했을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을 떠올릴 때 시민들을 향한 무차별한 총기 난사나 지역봉쇄, 언론통제 등 전두환 정권의 악행에 앞서, 길에 나서서 시민군들에게 주먹밥 한 덩이를 쥐여주던 광주 어머니들의 손길과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고 시민군을 병원으로 실어 나르던 택시기사들의 그 몸부림을 먼저 떠올린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 문재학은 5월26일 밤 어머니 김길자씨와의 통화에서 ‘엄마, 아무래도 창근이가 죽은 거 같아요. 긍께 창근이 생각해서라도 여기서 조금만 더 심부름하고 갈게’라고 하더니 27일 새벽에 도청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고 사진가 김민정은 사진집 <5·18을 생각한다>에서 기술하고 있다. 당시 희생자들은 ‘내 친구’ ‘내 이웃’이 이유 없이 구타당하고 살해당하는 것을 보고 분연히 함께 일어섰던 것이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숭고한 믿음과 선에 대한 실천적 의지였기 때문에 5월의 정신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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